<font color=blue>올드 미스 내 딸

2007.10.31 15:59

백혜숙 조회 수:91 추천:8

올드미스 내 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백혜숙 올드미스인 내 딸은 아침식사 준비하는 나에게 엄마를 두어 번 부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 그분 있죠, 그 할아버지 있잖아요?” “누구?” “000씨라고.” “할아버지라니? 으응, 네 큰아버지? 그런데?” “그분이 교통사고로 예수병원에 입원하셨대요. 저 아는 경찰관이 조사하는 중인데 저를 아느냐고 물으시는데 아마 많이 다치신 것 같아요.” “그래? 참 오래 안 뵈었네.” “이돈 오만 원 갖고 엄마가 한 번 다녀오세요. 제가 바빠서요.” 며칠이 지난 일요일 날, 딸이 내 곁으로 다가와 “병원에 다녀오셨어요?” “내가 중간고사 때문에 못 갔어. 오늘 가면 좋겠는데…….” “그럼 저하고 함께 다녀오지요.” 나는 딸의 차에 올랐다. 마침 딸이 병실을 알고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릴 알아보고 “저게 누구여? 제수씨 아녀?” “예, 어쩌다 이런 변을, 큰 일 날 번하셨네요.” 형님이 옆에서 깜짝 반가워하시며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이게 웬일이여?” “형님, 죄송해요. 제가 학교에 다닌다고 모두 잊고 살았네요.” “저 양반은 시내버스에 치어 입원한지 오래 됐어. 지금은 나은 편이여.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살았어?”      “졸지에 서방님 잃고 그냥 살다보니 이렇게 살게 되네요. 이거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왔어요. 좋아하시는 거 사다드리세요.” “이게 무슨 소리? 얼굴만 봐도 좋은데.” “그래도 그런 거 아니에요, 꼭 사드리세요” “내가 참전용사잖아? 대통령도 도지사도 나에게 잘 해줘요. 저것 봐. 검사 조카가 꽃바구니도 크게 만들어 보냈어. 그리고 막내딸이 아주 효녀라서 참 잘 해. 제 엄마 백만 원, 나 백만 원 매달 빠짐없이 보내와. 나는 정부에서 나오는 것과 합하면 이백오십만 원인데 한달 용돈으로 다 쓰고 살아.” “네에~” 딸과 나는 한순간 사인이 맞았는지 꽃바구니에 시선이 닿았다. ‘검사 000, 쾌유를 빕니다.’ 형님은 나에게 “어이, 저 양반이 막내딸 서강대학교 시험 치러 가는 날 어쩐지 아는가? 뚝 떨어져버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눈물을 훔치며 서울로 간 아이여.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호주에서 5년간 있다 한국으로 와 회사를 차려 돈을 아주 잘 벌어.” “그래요, 형님? 그때 사시는 곳에서 사세요?” “아녀, 이층집 사가지고 이사했어.” 딸과 나는 몸조심 잘하시라고 당부하며 나오는데 형님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오시면서 꼭 왕래하며 잘 지내자고 말씀하셨다. “늙으면 자랑거리가 힘이 된단다. 그것 봐라. 조카 검사가 보냈다는 꽃바구니가 의젓이 놓여 있는 건 좀 우습지 않니?” 우리는 웃으며 병원을 빠져 나왔다. 며칠 뒤 “엄마, 그 큰아버지 딸 참 대단하데요.” “언니라고 해.” “네, 제가 우연히 인터넷을 들어가 보았더니 그 골드미스 있잖아요?” “골드미스가 뭔데?” “돈 많고 능력 있고 기타 등등의 조건으로 결혼 안한 올드미스를 골드미스라고 하거든요. 80평 빌라에, 벤츠에, 직원이 30여 명이나 돼요. 큰아버지께서 몇 십 억 재산이 있다고 자랑할만해요.” 또 며칠이 지난 밤 늦은 시간에 골드미스도 아닌 올드미스 내 딸이 엄마를 부르며 내 방으로 건너왔다. “큰아버지께서 양복을 쭉 빼입고 제 사무실에 오셨어요.” “그래? 괜찮으시던?” “네에, 이거 엄마 갔다드리라고…….” 딸은 흰 봉투를 내밀었다. 파스․피부약과 돈 십만 원이었다. 나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사실은 어떻게 된 시숙인지 촌수도 번지수도 따지면 잘 몰랐다. 십년 전인가 칠순잔치 때 연락이 와서 간 뒤로 소포로 땅콩을 보낸다든지 몇 번 그러다 서로 연락이 끊겼었다. 봉투에는 제수씨 요긴하게 쓰라고 씌어져 있었다. 나는 낯이 뜨겁고 왠지 잠이 오질 않았다. 셋째 시숙께서 그 집에 대한 말을 안 하는 걸로 보아 별로 가까운 친척은 아닌 것 같고, 그 옛날 함태영 부통령께서 전주에 오셨을 때(그땐 전주에 호텔도 없던 시절이다) 시어머님과 세 분 시숙님, 내 남편과 함께 도지사 관사로 불려가서 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분은 먼 친척인 것 같았다. 그때 세분 시숙님은 큰 은덕을 입은 것 같았다. 내가 결혼할 당시 큰 시숙님은 문턱 높은 은행장으로 근무하셨지만 돈 봉투는커녕 어려워서 고개도 못 들고 지낼 정도로 어려웠던 관계였다. 그런데도 오히려 먼 친척인 고령의 시숙이 내게 잘 대해주니 고마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른여덟 살 골드미스! 내 셋째 딸과 내 친정 조카딸 셋은 동갑내기다. 내 셋째는 잘나가는 공무원으로서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교사다. 혈육처럼 잘 지내는 육촌오빠의 딸은 숙명여대를 졸업한 뒤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대사관 직원과 결혼하였다. 현재는 남편이 주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며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런데도 애를 낳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시숙님 딸은 집안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내가 용돈이라도 한 번 흐뭇하게 주고, 시숙님에게 뜨끈뜨끈한 술국이라도 한 번 사드렸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짠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가 있는 집은 절대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숙님 딸이 결혼하게 되면 진실로 축복을 해주리라 마음속에 다짐한다. 나는 내 셋째 딸이 3학년짜리 유혜민과 1학년짜리 유혜성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 딸이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집을 가지 않은 내 넷째 딸은 골드미스도 아닌데 어쩔 것인가? 올드미스 그 딸 때문에 나는 시방 잠도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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