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나바위 피정의 집을 찾아서

2007.11.03 17:15

김금례 조회 수:138 추천:8

나바위 피정의 집을 찾아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김금례   나지막한 산위에 있는 나바위 화산성당은 1845년[헌종 11년] 10월12일 밤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고주교와 다불뤼안 신부와 함께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김대건 신부 일행이 그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하려고 1897년 본당이 설립되었다. 한때는 교우가 3,200명이 되었으나 젊은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면서 노인들만 남은 초라한 성당이 되었다. 이곳에 범석규 신부님이 주임신부로 가시게 되었다. 범 신부님과의 만남은 내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전동성당 아동교리반 교사로 일할 때였다. “본명이 뭐지?”   “모니카에요.” “나는 범 신부다.”   “아이 무서워!” “왜 무서워?”   “범은 무섭지 않아요?” “내가 범이 아니라 성씨가 범 씨란다.” 하시면서 꿀밤을 주셨던 신부님이다. 그 뒤 범 신부님은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던 남편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셨으며, 성가정도 이루게 해주셨다.  우리 부부는 신부님을 만나고자 처음으로 화산성당을 찾았다. 신부님은 성당 앞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반겨 주셨다. 그러나 초라한 성당에서 신부님을 뵙자 눈물이 핑 돌았다. “신부님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을 찾으시라고 하느님이 이곳으로 보내셨나 봐요.”   이렇게 위로할 때 신부님은 이곳이 성지이니까 성 김대건 신부님의 정신을 본받아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곳에 피정의 집을 짓겠다고  하셨다. “신부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요?” 하지만 신부님의 하고자 하는 열정은 너무도 뜨거웠다.  신부님이 혼신을 다 하여 피정의 집이 지어질 때 참 기뻤다.  벽돌 한 장 한 장 올라가는 것을 보고자 우리 부부는 자주 나바위 성당을 찾았다.  나바위 피정의 집이 완성되자 신부님은 익산 송학성당 주임신부로 가시게 되었다. 행복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송학성당으로 가신 신부님에게서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웠다. 그 뒤 나바위 성당을 찾지 못했는데 오늘 성마리아 꾸리아 간부님들과 레지오 마리애 1단계 기사교육을 받으려고 이곳에 왔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고 했던가? 범 신부님은 이 세상을 떠났어도 신부님의 흔적이 피정의 집에서 숨쉬고 있다.  교육장에 들어서는 순간, 신부님의 환상의 늪에 빠졌다. 그리움이 밀려왔다. 밀려오는 그리움에 가슴이 저렸다. 신부님의 피와 땀으로 건립한 피정의 집에서 120명의 교육생이 행복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있었다. 김진룡 신부님으로부터 교육을 받는 순간, 창틈으로 범 신부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어둠이 짙어졌다. 애잔한 달빛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잠을 못 이루고 밖으로 나왔다.  소슬바람이 휙 지나갔다. 가을하늘에 순명하며 고개를 숙인 나뭇잎 사이로 둥근달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달 속의 토끼가 신부님께 양보했는지, 달 속에서 신부님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웃으면서 반겨 주셨다. 기쁨이 필요할 때 기쁨을 주셨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주셨고, 믿음이 필요할 때 믿음을 주셨던, 신부님의 빈자리가 그리워집니다. 항상 길잡이가 되어 보살펴 주셨던 범 신부님은 어느 날 병실에서, “막내가 몇 살이지?”   “29세인데요.”   “막내의 혼배미사는 못할 것 같구나.”   그때 신부님은 하느님 곁으로 가실 것을 예감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요? 마음이 저려옵니다. 세상에서 신부님과의 행복했던 이야기들을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리스도 고난의 길을 몸소 걸어간 하느님의 종으로서 신부님이 제일 좋아하신 ‘배려’란 두 글자 속에서 나왔던 성서의 말씀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 피정의 집 가을 하늘이 한없이 높고 푸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을까? 어디선가 나는 왔습니다. 온 곳도 모르면서 왔고 갈 곳도 모르면서 나는 떠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여정에서 내 곁을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앞으로 함께할 누군가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워 하느님께 의탁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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