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ㅎ 목사님께

2007.11.04 08:17

정원정 조회 수:70 추천:6

편지글 (2)                                                                                                   ㅎ 목사님께                                                                        우아한 편지지에 적어 보내준 소식 잘 받았습니다. 계절마다 소식을 전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딘가에 ㅎ 목사님이 계시고 내가 여기 있다는 은총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어머님도 그런대로 큰 병 없으시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성큼 가을이 다가 왔네요. 하늘에도 마당에도 내 거실까지 가을 햇살이 못 견디게 슬픈 빛을 띠고 있네요. 안 그래도 가을인 요즈음 스산한 마음인데 하필 공교롭게도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게 되었습니다. 눈이 붓도록 울고 그 책을 지금 막 책장에 꽂고 와서 편지를 씁니다.        지금 창 너머 하늘은 옥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합니다. 끝없이 차분하고 적요하네요. 구름은 듬성듬성 분홍빛으로 가을을 피우고 있군요.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바이없이 쌓입니다. 사람도 한 생을 참회로 걸러낸다면 석양의 저 하늘처럼 정결하게 순화될 수 있을까요?      ㅎ 목사님! 자연의 조화로운 순환을 보노라면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광을 보노라면 어떤 설교 이상으로 마음을 성찰하도록 일깨워 주기도 하는가 싶어요. 절절하게 살아온 경험들이 투명유리 너머로 보이듯 그려지네요. 얼마만한 세월로 견뎌내야 지난 날, 서러움까지라도 따뜻하게 보듬고, 넉넉하게 안고 달래는 날이 있을까요? 무엇이 그렇게 나 자신을 태질하며 갈구와 그리움을 안고 달려 왔는지, 그리고 내 식구, 나 외에는 한눈 주지 않았는지, 부끄러움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ㅎ 목사님! 한 시절 목마르게 희구했던 것, 이제 다 스쳐버린 시간 앞에 옷깃이라도 곧추세우고 남은 시간만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드려야겠지요. 다가오는 황혼에도 희망은 있을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경외의 가슴이 남아 있는 한 말입니다.      ㅎ 목사님! 내가 글재주가 있다면 당신에 대해서 평전 (?) 한 편 쓸 수 있을 텐데요. 아직도 세탁기 없이 사시는 것이라든가, 그 옛날 쓰던 검은 금성 전화기를 지금껏 쓰고 있는 것이라든가, 또 있지요. 어느 독지가가 당신의 외국 유학길에 후원하는 마음으로 준 장학금을,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돌려 준 사람이 당신입니다. 장학금을 돌려 준 사람을 난 아직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결곡한 성질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산중에 사는 기인도 아니면서 버젓이 대학의 도서관의 책임자로 있음에도 ㅎ 목사님의 청렴한 생활과 물질을 낭비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우리 범인은 흉도 못 낸 답니다. 편리한 생활 위주로 사는 요즈음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면을 글로 쓰면 좋을 듯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의 이야기로서는 재미있지 않겠어요? 늘 진국으로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ㅎ 목사님! 올 여름 더위는 유난스러웠지요? 그래도 잘 이겨냈네요. 오는 가을도 잘 넘기겠지요. 난 여름동안 한지공예 예단함을 다섯 벌 만들었습니다. 미뤄 놓았던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많다보니 정리를 해야겠기에 억척을 부리고 끝냈습니다. 공예란 한 번 손을 대면 물 마시는 것도 잊고 몰두하게 되지요. 장인정신이 있는 양, 내심 자화자찬(?)을 하면서 작업을 하지만 마무리를 하고나면 몸져눕습니다. 느는 솜씨를 덮어두기에는 미련이 남지만 기력은 더 욕심 부리지 마라 하네요.   가을이 오는 길목입니다. 감기 들지 않도록 몸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보고 싶네요.                                                                  2006. 9. 13.                                                                 정 원 정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