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다비

2007.11.07 06:19

신기정 조회 수:68 추천:10

다비(茶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신기정 다비(茶毘)는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을 일컫는 말로 산스크리트어 '자피타(Jhapita)'를 음역한 말이다. 원래는 불교성립 이전부터 옛 인도에서 행해오던 장례법이었다. 그런데 부처님을 화장한 이후 불교도의 장례식으로 자리 잡아 불교의 전래와 함께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퍼졌다고 한다. 다비식은 연화대(蓮花臺)라고 불리는 단을 쌓아 행해진다. 연꽃은 진흙수렁에서도 청초한 꽃을 피우므로 연화대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자리를 의미한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또 다른 영생을 위한 이별이기에 불을 지필 때 사람들은 흔쾌히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사전을 보니 ‘도울비(毘)’자의 다른 의미에 ‘쓸모없이 되다, 쇠퇴하다, 떨어지다, 벗겨지다’의 뜻이 있다. 다비란 결국 혼이 빠져나가 허물만 남은 망자의 육체를 차에 비유한 참으로 고귀하고 순결한 단어인 셈이다. 마치 차가 우려져 물과 하나가 되듯이 육신이 순수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그런……. 큰스님들의 다비식 뒤에는 보통 수습된 사리를 직접 보는 친견법회를 연다. 사리를 오랜 기간 수행정진의 결과물로 여기고 고인의 행적을 기리는 것이다. 문제는 일부 사람들의 어리석고 얄팍한 계산이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바로 수습된 사리의 양으로 수행의 깊이를 가늠해 보려는 것이다. 1977년 9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던 고상돈씨가 알래스카의 매킨리에서 사망한 것은 2년 뒤의 일이었다.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가운데 모교의 영어선생님만은 이상한 논리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가장 멋진 죽음이다. 큰 사람일수록 정상에서 죽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역사에 더 오래 남게 된다.”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 뒤 바로 결혼하여 사망 당시 유복자까지 있었다. 그러니 남은 가족의 입장만 생각해도 감히 해서는 안 될 망언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중을 헤아릴 것도 같다. 사람은 무엇보다 죽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도 그가 죽음을 택하면 그를 향한 사람들의 증오가 누그러진다. 한 번 뿐인 삶을 스스로 포기한 것에 대한 면죄부일 것이다. 그럼 얼마나 오래 살고 어느 정도의 몫을 해야만 ‘걸레스님’ 중광의 마지막 달마그림 전시회 주제처럼 '괜히 왔다 간다'는 생각이 없어질까? 고령화시대에 맞추어 늘어나는 도시외곽의 노인병원들을 보면서 삶의 길이와 그 한계효용의 상관도를 계산해 보지만 답은 없다.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육신 잘 보존해서 뭐 혀?” 억척같은 노년 고생을 만류할 때면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최소한 육신의 마지막 기력까지 소진한다면 한 줌 바람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수월할 듯도 하다. 마치 권투선수들이 계체량(計體量)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옷을 벗고 침까지 뱉어내 몸무게를 줄이는 것처럼 말이다. 절정의 채도(彩度)를 간직하고 자결하는 잎사귀들의 떨어지는 의식을 보며 내게 남은 물감들을 정돈해 본다. 변변한 사리 하나의 윤곽도 그려내지 못했는데 어떤 색은 다 써버렸고 어떤 것은 이미 반으로 접혀있다. 삶의 밑그림 또한 여전히 완성을 거부하는 진행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새 꽃눈과 잎눈을 그릴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감사하며 남은 여백만큼은 더 진한 순색으로 채워가고 싶다. 계절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자리 한구석을 듬직이 그려낼 화선지부터 준비해두어야겠다. <2007.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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