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단수수와 수수깡

2007.11.14 13:50

김세웅 조회 수:59 추천:8

   단수수와 수수깡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금요반) 김세웅 어렸을 때, 마당 앞이나 밭두렁에는 어머니께서 심으신 단수수가 있었다.  당분(糖分)의 섭취가 턱없이 모자라던 당시, 단수수는 우리 꼬마들에겐 꿀단지나 다름없었다. 사탕 같은 게 어디 흔했던가? 기껏 단 것이라고 해야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빨아먹는 눈깔사탕이 있었을 뿐이었다. 갈증이 나거나 단 걸 먹고 싶을 때면 단수수를 베어다 맛있게 빨아먹으면서 행복해 했었다. 그런데 단수수에 비해 겉모양은 구분이 안될 만치 아주 비슷한 모양의 수숫대라고도 불리는 수수깡이 있었다. 꺾어서 빨아 먹고자 하면 단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아련한 추억이다. 가고자 하는 곳이 있어 웬만치 가까운 거리면 운동 삼아 걷는다. 어느 날, 시내 중심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데 처음 가보는 골목에 들어서니 탁, 눈에 띠는 게 있었다. 한 무더기 쓰레기를 모아놓은 바로 옆 전선주에 ‘양심(良心)’이라고 쓴 커다란 표지(標識)가 붙어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되 남 몰래 슬쩍 아무것이나 버리지 말라는 뜻으로 반장이나 어느 분이 붙여 놓았으리라. 양심이란 낱말을 오랜만에 마주하니 새삼스러웠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낱말인데 걸어가는 내내 그 단어가 내 가슴을 파고 들며 여운이 일었다. 중학교 때, 교회 웅변대회에서 어느 여학생이 양심이란 하나님의 소리라고 외치던 장면이 기억되었다. '양심의 행방 불명시대'라고 탄식하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양심에 거리낌없이 산다면 정직하고 언제나 떳떳하게살 수 있으련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질서와 건강한 사회를 위해, 아니 인생살이에서 보람있는 삶을 살려면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될 귀중하고 값진 것이 양심이라는 영혼의 소리가 아니던가?  그렇듯 귀하고 값진 양심인데 쓰레기를 버리듯 함부로 내던지며 어긋나게 사는 족속들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고 자신도 그 중의 하나이거니 생각되었다. 양심이니 도덕 윤리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그릇된 인식이 쓰레기 더미 같이 쌓여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아닐는지. 도처에 거짓이 횡행천지(橫行天地)하고 양심이 마비된 증후들만 널브러져 있는 현실이 몹시 안타깝다. 스스로 물어 보았다. ‘내가 과연 양심에 대해 거론해도 괜찮은 사람인가. 양심을 걸레 같이 여기지는 않았을망정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살아 온 적은 없었던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다! 나 자신을 포함해 지성인이라 자인하는 사람들까지도 자기양심에 두터운 덮개를 씌워놓고 살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의식은 하향 곡선(下向 曲線)을 그려온 지 이미 오래이다. 양심이 하잘것 없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져 온 것이다. 종교적 신앙양심에서부터 교육자적 양심이나 정치인들의 양심 등등.  모든 분야에서 양심은 그 빛을 잃고 어둠 속에 묻혀 버리지 않았나 싶다.   성직자들과 종교의 신도들은 사회생활 곳곳에서, 교수나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그리고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은 양심적인 말을 하고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며 사회각계의 지도자들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행동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인가? 단물이 절실히 필요한데 수수깡을 내밀며 단수수라고 우겨서야 될 말인가? 수수깡을 가지고 단수수로 우기는 따위 꼴불견이 맥을 못 추는 사회였으면 한다. 요즘 세상에는 수수깡 같은 말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사회의 구석구석에 날아다니고 있다. 값지고 귀한 ‘양심’이 구체적인 생활에서 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되어 마구 굴러다닌다는 말이다. 남녀간의 사랑, 종교에서의 아가페 사랑이나 자비, 그리고 정치에서의 국민통합(국민총화)이니 정의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그를 갈망하고 실천하면서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회였으면 한다. 양심을 한낱 구두선(口頭禪)으로 무책임하게 뇌까려대는 악습일랑 우리 사회에서 하루 속히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거짓의 사나운 물결이 너울거리는 이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들 사회구성원들 모두의 책임이려니 싶다.                                                                             (2007.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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