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별을 올려다 보며

2007.11.28 14:48

정원정 조회 수:79 추천:7

별을 올려다보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정원정                                                                  무언가에 끌리듯 마당으로 나갔다. 늦가을의 청량한 밤공기가 싸하게 나를 휘감았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구름 한 점 없는데도 별빛은 선명치 않았다. 잠시 서있는 사이 불을 켠 비행기만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천천히 7,8대가 시간을 두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게 뚜렷이 보였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별빛이 그립다. 지금은 공기가 맑은 시골에서도 가로등과 집집에서 새어나오는 전등불빛들이 하늘의 별빛까지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것도 그렇지만 내 눈도 늙어 맑지를 못한 탓이려니 싶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별빛은 하늘도 땅도 깜깜한데서 제 빛을 뿜어냈었는데…….      내가 별을 본 첫 번째 기억은 6,7세 무렵, 어느 남성의 성악소리에 마음을 홀리는 순간, 어쩌다 본 찬란한 별이었다. 그 때 봤던 별은 새까만 넓은 천에 흩뿌려 놓은 보석 같았다.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 영롱함에 가슴 설렜으며, 남성의 성악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설렘을 감지한 첫 경험이었지 싶다.     두 번째 기억은 공부를 하고 싶어 집을 떠나서 도시로 처음으로 나왔을 때였다. 초등학교를 나온 뒤의 일이다. 이리(지금의 익산) 보육학교가 설립되면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학의 꿈을 안고 아득한 길을 찾아 20리 밖, 큰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잠이 들었었다. 그 시절은 교통편이 하루에 이리까지 갈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깨우기에 일어나 보니 난데없는 오빠였다. 데리러 온 것이다. 집에서 뒷받침할 형편이 아닌데 여자아이가 도시에서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 시절 당연히 위험하게 생각 했을 게 뻔하다. 무슨 요령으로 객지에 가서 공부하려고 시험을 보겠다고 집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가시내들이 집을 나선다는 것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뜨신 뒤였고, 오빠가 생계를 맡아 가장 노릇을 할 때였다. 어머니는 권한이 없으셨다. 그만큼 아무 능력이 없으셨다. 당연히 오빠의 채근을 거부할 처지가 아니었다. 위험천만한 내 작심은 생각되지 않고, 오빠가 무척 미웠다. 소가 고삐에 매어 끌려오듯이 오빠 뒤를 따라 20리길,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밤이라 어서 집으로 가고자 청년인 오빠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나는 숨이 가빴다. 치마를 펄럭이며 흰 저고리를 입은 15세의 시골 가시내는 훌쩍훌쩍 울며 빠른 걸음으로 오빠의 뒤를 따르며 억울하고 서러워, 아무리 울음을 멈추려 해도 멈추어지지 않았다. 오빠는 속으로는 화가 났을 테지만 아무 티도 안 내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었다. 어디쯤의 솔밭 사이, 약간 언덕진 길이었다. 그 신작로를 막 넘으려는데 낮게 바라다 보인 하늘에는 찬란하게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된 내 눈 속에는 별이 각각 긴 화살이 되고 예쁜 꽃이 되어 박히고 또 박혔다.   그 오빠가 지금 89세이시다. 그 때의 일을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다. 다시 눈물이 어린다. 그 때의 오빠의 마음이 헤아려져서다. 공부하고 싶어 하는 어린 누이를 뒷받침하고 싶었겠지만 가난한 게 한이었을 그 심정을 생각하니, 오늘 밤에 별빛도 그 때와 다름없이 아름답게 꽃처럼 아롱진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기댈 곳도 없으면서 어떻게 집에서 탈출하려 했을까. 그 열정을 다 잃어버린 79세의 나는 지금 조용히  지난 일을 회상할 뿐이다.   뒤에, 하나님은 나를 기어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게 하셨다.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구석진 시골에서 서울까지 가난한 집의 아이가 어떻게 공부하러 갈 수 있었겠는가?  학교에서 종강할 때마다 이번만이다 하고 짐을 싸들고 귀향했었다. 다음 학기의 등록금은 생각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새 학기가 되면 또 길이 열렸다. 사람은 나처럼 공부를 하면 한평생, 안 하면 두 평생을 사는 건 아니다. 귀한 것은 소신을 가지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의미가 있다. 내 삶에서 그것을  뜨겁게 깨달은 것은 내 기억으로, 갱년기를 맞으면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머리야 녹이 슬고 열정은 사그라지고, 몸은 쇠해지지만 가슴으로 정이 쌓이고 깨닫는 새로움이 있다.   뒤늦게 수필공부를 하다 보니 날마다의 생각이 정리가 되는 듯하다. 사람과 우주만물을 보는 눈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다. 미세한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야만 글을 쓸 테니까. 내 속에 아름다운 것만 느껴 봐도 아딘가?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 놓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 늙으면 사람의 관계에서 서운한 게 많다고들 한다. 그것은 자신이 약세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여생을 새로움의 연속으로 이어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기력이 있을 때까지 말이다.                                             (2007.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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