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뿌리공원을 찾아서

2007.11.30 13:08

임두환 조회 수:264 추천:10

뿌리공원을 찾아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임두환 가을의 끝자락, 오색단풍으로 자태를 뽐내던 나무들도 겨울채비에 여념이 없다. 도로변 은행잎은 소슬바람에 노랑나비가 되어 땅위를 날고, 울긋불긋 아름답던 단풍들도 슬그머니 마음을 비우고 있다. 농촌일손이 마무리되는 이맘때가 되면 전라북도 임(林)씨종친회에서는 화목을 다지고자 해마다 한 차례씩 관광길에 나선다.       오늘은 세계에서 한 곳밖에 없다는 뿌리공원을 찾아 나섰다. 뿌리공원은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길 51호에 자리하고 있다. 유등천 맑은 물을 따라  공원 입구에는 노인휴양종합복지시설을 자랑하는 ‘장수마을회관’이 들어서 있고, 유등천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만성교)와 산책로를 따라 주변 경관은 몹시 아름다웠다. 조상의 혼을 불어넣은 듯 각양각색의 성씨조형물에서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뿌리공원 입구 커다란 조형물에는, “뿌리공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여 경로효친사상을 고양시키고, 한 겨레의 자손임을 일깨우고자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품을 세운 산 교육장이다. (중략) 이곳 뿌리공원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숭조위신의 정신으로 화목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충효의 실천으로 한 민족의 얼을 자손만대에 길이 빛내야 할 것이다.” 라고 새겨져 있어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286성씨에 4,179본관이 있다고 했다. 이곳 뿌리공원에는 72개 성씨조형물이 들어서있는데, 임(林)씨 조형물은 맨 앞줄 10번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임씨 조형물은 나무목자 2개가 8획이라서 8개 모서리로 수풀임(林)자를 형상화하였다. 한눈에 보아도 임씨 조형물임을 알 수가 있었다. 특색 있게 꾸며놓은 성씨조형물에는 도시조(都始祖)유래가 상세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우리나라 임(林)씨는 중국성씨 84세(世) 임팔급공(林八及公)이 1100여 년 전 당나라 팽성현에서 한림학사병부시랑(翰林學士兵部侍郞)이란 높은 자리에 게시었으나 당나라 말기 극심한 혼란기에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참소를 당하게 되자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동료 7학사와 함께 배를 타고 피신하다가 파도에 밀려 신라국 평택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략)” 임팔급(林八及) 도시조(都始祖)님은 나의 39대조가 되신다. 안내를 맡은 종친 어른께서는 임(林)씨가 우리나라 성씨 분포도에서 10번째 순위에 들어있고, 90여 본관으로 분파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 많은 성씨 가운데서도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번창해나간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우쭐해졌고 가슴 또한 뿌듯하였다. 우리나라 본관별 인구분포도는 김해김씨가 9.0%, 밀양박씨가 6.6%, 전주이씨가 5.7% 순위였고, 본관별 성씨종류를 보면 경주(慶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87개, 진주(晉州) 80개, 전주(全州) 75개 성씨 순으로 나타나 있었다. 어느 날 MBC 생방송 일요토픽에서 ‘희귀성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희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의 사연을 화면에 담아 보였는데,   “돈, 대, 묘, 개, 저, 군, 초, 비, 궉, 후, 삼, 랑, 내, 빙, 전강, 망절,      어금…….” 도대체 알 수 없는 이 글자들은 무엇일까? 바로 국내에 있는 희귀성씨의 일부다. 방송에서 소개한 희귀성씨의 애환도 별스러웠다. ‘랑’씨 성의 사람들은 ‘남’이나 ‘양’씨로 오해 받기 일쑤였고, ‘빙’씨 성은 ‘방’씨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내’씨 성을 가진 한 출연자는 어렸을 때 ‘내시’라고 놀림을 당한 경험을 털어 놓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10명 정도가 있다는 ‘망절’씨의 사연도 있었고,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후손 미량 ‘대’씨와 세계적인 인라인선수로 ‘궉’씨 존재를 확실히 알린 궉채이 선수도 있었다. 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한 ‘빙’씨 집성촌을 생방송으로 연결해서 ‘빙’씨 자랑을 해보라는 리포터 청에 “600년이나 이어져온 뿌리 깊은 성씨라는 것과 단합이 잘 되고 범죄자가 전혀 없는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는 마을주민의 말에서, 희귀성씨지만 화목하게 살아내려 오는 그들만의 꿋꿋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리에 함께한 종친께서는 요즈음 들어 경로효친사상이 점점 없어지고 조상의 뿌리가 흔들린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본인이 죽으면 조상님 벌초는 누가 하고 시제는 누가 차릴지가 걱정이라서 잠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아들이 다섯이나 있지만 누구하나 관심이 없고, 많이 배운 놈일수록 더 무심하다며 목청을 높였다. 종친께서는 어쩌면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과도 같았다. 아버님 살아계실 때는 직장 일 바쁘다며, 벌초는커녕 조상님시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나였다. 아버님께서도 종친처럼 똑같은 말씀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서 집안종중 일에 눈을 돌리다 보니 너무도 바쁜 나날이었다. 종친께서 하신 말씀이 기우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종친들과 함께한 하루 동안 뜨거운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칠순을 넘긴 어르신들이었지만, 한 핏줄이라는 애착심은 대단하였다. 뿌리공원의 성씨조형물에서 조상의 얼을 되새기며 음덕을 받을 수가 있었고, 여러 종친들과 친목을 다져보는 절호의 기회였다. 조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야 할 곳이 뿌리공원이구나 싶었다.                                         ( 2007.  11.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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