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만남

2007.11.30 18:39

오명순 조회 수:78 추천:9

만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오명순 예정된 만남은 설렘이고 그리움이다. 곱게 물든 단풍이 퇴색되어 우수수 떨어지더니 겨울을 몰고 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 다닌다. 저무는 11월. 올해도 이 가을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면서 어김없이 중학교 동창회를 가졌다. 벌써 네번째이다. 더 나이가 들면 하나둘 떠나게 되므로 하나라도 더 있을 때 만나야 한다고들 했다. 주일날 모이면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11시부터 교회 앞에 와서 문자로 재촉하는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예배축도를 20분 남겨 두고 만남의 장소인 변산으로 달려 갔다. 창 밖에는 때맞춰 밀물이 들어와 바닷물이 춤을 추며 우리의 만남을 축하해 주었다. 식사를 마친 친구들은 32년 전으로 돌아가 온몸으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단발머리, 까까머리 녀석들이 어느덧 반백이 되었다. 전혀 낯선 얼굴들도 있었고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친구 하나하나의 얼굴을 바라 보며 그가 살아 온 세월을 들여다 보았다. 중년 이후의 얼굴에는 그의 살아 온 역정이 묻어 난다고 했던가. 가시밭길을 걸으며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릴 때도 있었을 것이고, 자갈길을 걸으며 숱하게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친구도 있으리라. 또 높은 산을 넘으며 숨이 턱에 닿고 또 오르며 땀은 얼마나 흘렸을까. 이미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친구도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만나는 그 순간만은 고달픈 삶을 잠시 내려 놓고 사춘기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한결같이 행복하고 사랑스런 표정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내일을 알 수가 없다. 하물며 그 어린 시절에 50세의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 보았을 리가 없다. 마냥 꿈에 부풀어서 무엇이든 가슴에 품으면 다 이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꿈대로 설계한대로 살지 못했고 전혀 다른 길로 걸어 왔고 지금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서 있다. 나만 그럴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빠질 즈음 한 남자친구와 눈이 마주쳐서 미소를 가득 보냈다. 그 친구가 웃음으로 답례를 하는데 아! 그 때 그 미소였다. 나를 사랑한다고 꽃편지지에 가지런한 글씨로 쓴 편지를 여러 번 보내왔었지.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공부를 잘해서 상을 휩쓸던 친구. 15살 어린 나이에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때 아이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그리 쉽게 쓰곤 했을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슴 봉긋하게 올라올 무렵 분홍빛 소녀는 한사코 우리 공부 열심히 하고 더 커서 만나자며 외면했었다. 아무튼 답장을 한 번도 보내지 않았으니 한동안 실연에 방황했을 그 친구에게 새삼스레 미안했다고 눈으로 전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애는 나를 좋아하고 나는 다른 애를 좋아하고 그 다른 애는 또 다른 애를 좋아하고. 아직도 날 향한 그 마음이 진행형인지 물어 보고 싶었지만 우리의 만남이 오염될까 봐 눌러 참아야 했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줄줄 외워서 편지에 쓰고 통기타 노래 가사를 열심히 외워 애용하기도 했었다. 직접 몸으로 부딛치는 요즘 젊은 세대들과는 다른 연애풍조였다. 푸쉬킨의 '삶' 이라는 시를 참 좋아했었다.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드라마같은 생을 미리 예감해서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았을까. 출렁대던 바닷물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촉촉히 젖은 모래사장을 우리는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가끔 조개껍질이 우리를 시샘하여 말을 걸어 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동안 살아 온 얘기들을 어찌 그 짧은 시간에 다 나눌 수 있을까마는 우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잊어버리고 어깨를 바꾸어 가며 걷고 또 걸었다.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물들어 가는데 짧은 만남이 너무나 아쉬워 그만 집에 가겠다고 나서는 친구가 없었다. 결국 다니던 모교 근처로 다시 돌아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휴일이라서 고속도로가 막혀 새벽에 도착할 줄 뻔히 알면서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친구들의 마음이 나의 아쉬움과 같았으리라. 만나면 반갑고 삶의 자리로 돌아오면 또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고향이 있고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고 마음이 푸근하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나를 뭉클하게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남이 이루어진다. 새 생명을 잉태하여 축복 속에 만나는 첫 아기와의 만남은 신비롭고 신선한 만남이다. 그래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자의 모습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다. 전혀 다른 남남으로 만나 한 집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부부의 만남은 어쩌면 가장 긴 만남 중의 하나이다. 그렇지 않은 부부도 더러 있지만 백년해로라는 말을 쓰는 걸 보면 그렇다. 미우나 고우나 생이 갈라질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부부의 만남은 필연일까 악연일까. 원수처럼 미워하면서도 간섭하고 돌아 서지 못하는 것은 사랑해서라고 한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고 무관심이라나. 예정된 만남은 즐거움이고 설렘이지만 예기치 못한 만남으로 난처할 때도 더러 있다. 그래서 껄끄러운 관계는 만들지 말 일이다. 살다 보면 원수는 아닐지라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쌓인 감정 때문에 만나면 서로 얼굴을 돌려야 할 그런 사람이 아직 없어서 감사하다. 많은 만남 중에서 수필과의 만남을 빼 놓을 수 없다. 가슴 속 깊히 묻힐 뻔했던 나의 감성들이 죽은 듯하던 봄 들녘에서 새싹이 뾰족뾰족 올라오듯 그렇게 싹이 돋아나고 있다. 언젠가 글을 쓰게되면 시를 쓰고 싶었고 가끔 낙서하듯 습작하곤 했었는데 수필이라는 장르를 택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첫 날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을 때 알 수 없는 빛이 가능성을 제시하며 나를 설레게 했다. 나도 쓸 수 있을까 하고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칭찬전도사이신 교수님의 칭찬세례와 인생 대선배님들이신 반 선생님들의 격려 속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늘에 이르렀다. 다소 슬프고 외롭고 어두웠던 나의 지난 날들을 밝고 환하게 바꾸어 준 귀한 만남이다. 나의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 수필이라는 친구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만난 분들을 사랑한다. 글을 쓰다 보면 발가벗은 모습을 보이는 듯한 부끄러움도 있고 글을 보낸 뒤 다시 돌려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부족하기에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배움의 길을 계속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바쁜 일상 속에 스쳐 가는 숱한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의 만남일거라고 믿으며 모든 만남을 아름답게 가꾸고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저물어 가는 12월의 첫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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