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느티나무, 그 마을의 수호신

2007.12.24 16:37

이종택 조회 수:183 추천:8

느티나무, 그 마을의 수호신                               행촌수필문학회 이종택                                                              느티나무가 서 있는 시골 풍경은 농촌 본래의 고요한 얼굴이다. 남 없이는 나도 살 수 없다는 서로의 믿음으로 천지 어간에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살았던 이 민족의 착한 마음이었다. 주소며 번지는 커녕 동네 이름도 필요 없는 그저 두 팔 한껏 벌리고 바람과 비, 천둥번개, 함박눈 내리는 밤의 등잔불 빛, 상여 나가는 소리며, 오래 기다렸던 자식을 점지 받고 고마운 마음으로 정화수를 떠 올리는 어머니의 마음까지도 껴안고 다독였던 느티나무. 수백 년도 넘게 살아 온 느티나무는 아스라한 옛적 전설과 신화까지도 간직하고 있으리라. 느티나무, 말만 들어도 고향 풍경이 떠오른다. 느티나무는 우리네 농촌에 가면 으레 마을 한 가운데나 어귀에 넓고 높이 서 있었다. 느티나무 나이가 많을수록 오래된 마을이었다. 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지어 농부의 땀을 식혀주는 쉼터가 되었고, 마을사람들의 의견을 토로하는 회의장이 되기도 했다. 당산제를 지내는 신성이 깃든 곳이요, 패륜아를 벌주기 위해 열린 간이 법정이 되었을 때는 어른들의 호통이 준엄했다. 느티나무는 마을의 숨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내외간의 싸움소리, 송아지 울음소리, 불효자의 울음소리,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소리까지 들으며 자랐다. 느티나무는 그토록 우람한 자태를 지녔지만 누구도 주눅 들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객지를 떠돌아다니다가 고향을 찾아 돌아올 때는 물론이요, 하다못해 장에 갔다 돌아올 때도 멀리서 느티나무가 보일라치면 마음이 포근해졌다. 지금껏 온갖 세상만사를 다 굽어보았으련만 결코 누구를 탓하지 않고 거만스럽지도 않았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품어 주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수호신으로 신봉하고 좋을 때나 슬프고 외로울 적에는 느티나무 아래에다 정화수를 떠놓거나, 아니면 정성이 깃든 음식을 차려놓고 두 손을 비비곤 했었다. 느티나무는 우리네 삶의 무늬요, 한국농업사의 화석이자, 신농씨의 지문이라고 말한 어느 무속학자는 그 속에 서려있는 신비한 전설과 신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충남 홍성군청 뜰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전쟁이 터지거나 괴질(怪疾)이 번지는 등 고을에 액운이 감돌면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며, 전북 남원시 보절면의 어떤 느티나무는 풍흉(豊凶)을 알려준다는데 봄에 일제히 싹이 트면 풍년이 들고, 여러 차례 나누어 피면 농사짓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부안 내소사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는 6. 25 전쟁 때 총을 맞고 붉은 피를 흘렸다고 하며, 김제 봉남면에 있는 느티나무는 그 앞에서 정성껏 빌면 아들을 점지해 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렇듯 느티나무는 우리의 마음속까지 드리워져 있다. 이 땅에 천년을 산 느티나무가 있다면 고려의 햇빛을 받고 태어나 조선의 바람을 맞고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은 백년도 못 참고, 아니 오십 년도 못 버티고, 도시로 떠난다. 그것은 농촌이 절멸(絶滅)의 위기에 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엄동설한에,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에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 그들은 고향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떠났었다. 마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아이들의 울름소리가 끊긴지 오래고, 학교도 문을 닫고 있으니 어찌하랴. 느티나무가 존재한 이래 이처럼 인간으로부터 버림받는 신세가 되기는 처음 일이다. 그래도 느티나무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 청년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쓸쓸히 기다리고 있다. 느티나무가 그 무성한 잎사귀들을 흔들며 떠나보냈던 그 사람들이 과연 다시 돌아와 너털웃음을 터트릴 날이 올 것인가? 고향은 자꾸만 야위어 가는데 떠난 사람들만이라도 모두 넉넉해졌으면 좋겠다. 돌아 올 추석에는 고향엘 찾아가 옛날 벗들을 느티나무 밑으로 불러 모아 막걸리 잔을 나누며 흠뻑 취하고 싶다.       (2007.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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