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목숨과 천륜

2008.01.02 13:31

황현숙 조회 수:180 추천:10

목숨과 천륜/황현숙 강릉에 사는 중학교 동창이 아무런 연락없이 찾아왔다. 중학교 때 줄곧 한 반이었던 친한 친구가 고향에 가서 내 소식을 알았다며 2년 전에도 찾아왔었다. 그 뒤 나의 아들이 강릉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기에 자주 만났다. 1년 전에 친구는 췌장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했지만 악화되어 희망이 없게 되자 하도 답답해서 나를 찾아왔다 하길래 진료비는 가져왔냐고 농담을 했다. 시어머니가 잘 가시는 속초의 모 병원의 병원장 사모님과 속초여고에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한문선생님도 2년 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 선생님은 남들이 잘 하기 어려워하는 충고를 나에게 잘 해주셔서 나보다 조금 어린 나이였지만 진실한 친구같았다.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한국에 오면 연락하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서점에서 운명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아들, 딸보다 두 살씩 어린 선생님의 아들 훈우, 훈영이 형제가 눈에 선했다. 올해 난생처음으로 상치교과인 한문을 가르치면서 1년 내내 생각난 선생님이다. 증조할아버지의 강렬한 한문교육풍토(서당)에서 자란 나였기에 속초여고에서 1학년 담임을 같이 할 때 한문선생님과는 의사가 소통되는 사이였다. 한 번은 나를 초청하여 선생님의 반 학생들과 함께 파란마음 하얀마음이라는 동요를 불러주어서 파란마음 하얀마음을 가진 선생님으로 늘 기억하고 있다. 약을 먹으려는 시도를 몇 번 해 보았고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 고통의 산이 갑자기 내 눈을 막았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큰집 형님도 고통스러워하기에 가슴이 시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농약을 먹고 동네 길거리에서 거품을 내뿜으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자살이 가장 어렵고 가장 고통스러운 길임을 어린 나이에 우연히 보았다. 고난이나 고통은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온다면 그 고통을 가진 자만 만들 수 있는 진주가 있다. 지난 3월 중국에 갔을 때 콩알만한 인조 진주 두 개를 얻어왔다. 조개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조개가 호흡곤란으로 만드는 것이 진주라며 그 자리에서 조개의 속을 열고 보여 주었다. 마침 집에 있던 두 개의 알약을 입에 넣으며 청산가리같은 극약이라고 생각해 보고 누운 채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때 나를 친구의 딸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또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친구의 엄마 심정을 헤아려보라고 했다. 힘겹지만 살아야 할 존재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의료보험도 되지않는 항암치료비가 한 번에 몇 백만 원이나 들고 항암치료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기에 온 가족을 못살게 할까봐 그런 생각을 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참담하였다. 그날 학사경고 4번 받고도 살아남은 이야기, 오래되기는 했지만 대형 교통사고 뒤에도 살아있는 기적 등 49년간의 삶을 여과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친구가 온 다음날 연세대학교 와지즈센터의 찾아가는 과학교실이 우리학교에서 열리는 날이기에 1교시는 양호선생님께 부탁했지만 허둥지둥 늦게 학교로 갔다. 원래 아침 담임 시간에 수학과학영재학생들을 불러서 강의와 실험을 들으러 오라고 안내할 참이었는데 돌발 변수가 생긴 것이다. 학교에 도착해 강의 시간 5분 전에 방송을 하였기에 홍보가 제대로 안되어 학생들이 조금 모였다. 연세대학교 생명과학과 김희준 교수님이 대학원생 두 명과 같이 와서 강의를 해 주셨다. 친구일로 강의와 실험을 참관하면서 눈물을 흘리니 교수님은 나보고 몸이 불편하면 어디 가서 좀 쉬다가 오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우리학교를 방문해 '세포는 왜 분열하는가'라는 주제로 3시간 강의와 실험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1학년 수학과학영재반과 영재시험을 본 학생 (한혜림, 박수경, 백종원, 차민경, 정선희, 서진주, 류지아) 뿐이어서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했더니 소수이지만 의욕적인 학생들과 해 본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하셨다. 어제 저녁 TV, 무릎팍도사라는 프로에서 진행자가 박진영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관객이 많고 적음에 상관하지 않고 가수로 오래 남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나도 학생의 수에 연연하지않고 재미있고 알찬 수업으로 오래 오래 교단에 서 있고 싶다. 소수의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실험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고 끝까지 참관하신 교장선생님께도! 생물을 24년 가르쳤으니 이자(췌장)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안다. 이자(췌장)는 소화에 관여하고 혈액 속의 포도당량을 조절하는 혈당증가 호르몬과 혈당감소 호르몬을 만든다. 그리고 탄산수소나트륨을 만들어서 위에서 내려온 염산을 끊임없이 중화시켜 주어야만 작은 창자에서 소화효소가 작용할 수 있는 Ph(폐하)가 약알칼리성으로 유지된다. 학생들에게 이자의 중요작용 3가지를 가르치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평소에 알고 조심하는 태도를 강조해야겠다. 생명을 탐구하는 것이 생물이다. 세상에서 끊어서는 안 되는 것을 물으면 밥줄, 힘줄, 명줄, 돈줄, 핏줄 등이다. 학생들은 여러가지 줄을 말했고 중학교 1학년인 딸은 대인관계, 꿈, 목표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인생의 식단도 다양하다 아침, 희망 한 공기 새참, 감사 한 컵 점심, 고뇌, 방황, 갈등 한 조각씩 저녁. 기쁨과 웃음 한 쟁반 방황이나 고뇌는 없으면 좋으련만 인생의 식단에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꼭 하나는 끼어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오더라도 우리는 슬기롭게 헤쳐가는 지혜와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생명은 내것이기는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않는가. 눈만 감으면 보이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형님과 친구가 부디 사랑하는 가족을 보고 힘내어 건강을 회복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기를 기원한다. 고통이나 고난을 걸림돌로 보면 패자이고 디딤돌로 보면 승자! 죽을 힘으로 살아내면 보란 듯이 살아남는다. 죽는 것은 세상에서 목숨 있는 모든 것의 숙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끊어서 안되는 것, 그 이름은 목숨이며 법이나, 힘, 그리고 총 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천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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