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빌려 사는 삶

2008.01.18 12:37

조규열 조회 수:102 추천:8

빌려 사는 삶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요반 조규열 지난 1월 12일 토요일 오후는 한 겨울인데도 이틀째 비가 온 뒤 점차 개면서 여느 겨울과는 다른 이상기온을 보였다. 나는 아침에 ㄱ양으로부터 시내 소극장에서 오후 4시에 자기가 출연하는 연극공연이 있으니 사모님과 함께 관람하시면 좋겠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어떤 일로 몇 차례 전화연락은 했었지만 아직 얼굴도 모르는 처지인데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마침 아내가 전화를 받아 바꿔 주었기에 “여보, 우리 문화인 한 번 되어봅시다.‘결혼’이라는 연극 공연에 초대를 받았는데 같이 가봅시다.”하고 제의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의외로 관심을 보이며, 언제 어디서 공연하는 연극이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우린 3남매 결혼시켰으니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오후 4시 경원동 소극장으로 가서 연극을 본 뒤 외식까지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우리 내외가 영화는 좋아하는 편이라 회원권까지 만들어 가끔 영화관에 가곤 했고, 마당놀이는 몇 번 본 일이 있었지만 연극은 처음이라 무척 어색했다. 내 생각에 연극은 연기에 관심이 있거나 젊은 연인끼리 만남의 기회로 삼는 장소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두리번거리다가 들어갔다. 객석은 100여석 되었는데, 빈 곳이 많아 자리에 앉고 나서도 사방을 둘러보니 역시 젊은 남녀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ㄱ양이 여주인공이라니 박수나 많이 쳐주리라 마음먹었다. 연극의 제목은 ‘결혼’인데 넓은 무대 공간에는 신부 드레스와 신랑 웃옷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고, 긴 소파 한 개, 꽃병 하나와 작은 바구니 한 개가 놓인 테이블이 한 쪽에 놓여있었다. 하인 역을 맡은 남자가 무대로 나와 작은 상자와 물건이름이 적힌 메모장을 넘기면서 재킷, 시계, 목걸이, 반지, 지갑 등을 외치며 관객들로부터 양해를 구하고 물건을 빌릴 때마다 공연티켓 한 장씩과 박수로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생동감과 즉흥적인 효과도 있고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친근감이 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극은 이렇게 하는 것이려니 싶어 마음도 끌렸다.    드디어 무대에 불이 켜지고 하인이 나와 빌린 물건들이 담긴 바구니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데, 오늘 신랑 역을 맡은 배우가 수수한 정장차림으로 등장하여 오디오를 켜고 음악이 흐르면서 연극은 시작되었다. 주인공인 남자는 예물로 쓰일 물건들을 자랑하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모두를 빌렸으며, 사용시간까지도 정해져 있다고 했다. 빈털터리인 남자는 외로워서 결혼하고 싶지만 가난한 자신과 결혼할 여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저택과 옷, 시계, 라이터와 하인 등을 모두 빌린 다음, 한 아가씨에게 연락해 자신을 만나러 오게 했단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부를 만나고 환심을 사서 인생의 화려한 출발인 결혼을 성공으로 이끌어 갈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나타난 신부 감은 수수하고도 갸름하며 S라인까지 갖춘 데 다 마음마저 따스한 것 같았지만, 차림새로 보아 넉넉하지 않은 집안 여자라고 여겨졌다. 그녀는 어머니께서 빈털터리에게 속아 결혼해서 고생만 하며 겨우 딸 ‘덤’만을 얻은 자기처럼 되어서는 안 되니, 네 신랑감은 부자고 가문도 좋아야 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빈털터리 허풍장이인데다가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갈등을 느끼면서도 시큰둥한 눈치다. 남자는 결혼을 하려고 모든 걸 시한부로 빌렸으니 속전속결로 밀어부처야 할 입장이지만 여자가 보는 현실은 다르기에 급할 필요도 없고 야속한 시간만 흐르니 속이 타는 건 남자 가슴일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인이 나타나 남자가 빌린 웃옷이며 셔츠와 넥타이를 차례로 거두어 가려 하니 앙탈을 부려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고, 오히려 사정없이 구둣발로 밟아 버리니 상체는 모두 드러난 데다 정말 꼴불견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신부 감인‘덤’에게 매달리며. “나에겐 모두 빌린 것들뿐이오, 저기 두둥실 떠있는 달님도, 저 은빛의 구름도, 이 하늬바람도, 그리고 어쩌면 여기 있는 나마저도, 또 당신마저도…….  빼앗기는 게 아니라 되돌려 주는 거예요. 하지만 나에게 아직 바지가 남아 있어요. 나의 청혼을 받아주세요!” 라며 매달린다. 내가 생각하기에 남자의 얘기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멋지고 철학적인 명언임이 분명했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일까? 어떤 물건들은 내가 내 돈으로 산 것이고 내 이름이 적혀진 것도 있으니 내 물건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사는 동안 쓰다가 놓고 가야 하니 영원한 내 것은 아니다. 여자는 가엾은 남자의 얘기를 되뇌어 생각해 보면서 옳은 얘기라고 여기며 어머니의 주문을 무시한 채, “영원한 것은 없겠지요. 당신은 너무 착해서 그런 거예요.” 오히려 동정하며 연민의 정을 보인다. 그러자 남자는, “구두와 넥타이, 셔츠 등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없어도 나는 더 행복해요. 바로 ‘덤’당신이 있으니까.”라고 넉살좋게 말한다. 여자는 어머니와의 굳은 약속을 떠올리면서도, 결국에는 빈털터리며 사기꾼인 남자에게 끌려 스스로 결혼을 결심하고 끌어안는다. 인생이란 어찌 생각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재물도 부귀영화도 사랑도 잠시 빌려 쓰다가 돌려주고 가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녀는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나도 어머니와 똑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으니 빈털터리 남자와 결혼할 거예요. 용서하세요. 행복하게 살도록 빌어주세요.” 하며 오히려 어머니를 설득하여 결혼하게 된다. 화려한 예물이나 대부호가 아닌 진실을 택한 것이다. 옳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인생도 시한부로 빌린 것일 뿐, 참된 것은 영원하다는 진리 말이다. 신랑은 웃옷도 신발도 없이 달랑 바지만 입었고, 신부는 수수한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한 쌍이라 믿기에 관람석을 메운 하객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주례도 화려한 장식도 없는 결혼식을 마치고 퇴장하면서 무대의 불이 꺼진다. 요즘 결혼이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것 같지만 사랑과 이해의 진정성이 감추어지거나 무시되고 조건이나 겉치레만을 쫓는 경우가 많아 이혼이나 갈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결혼뿐이 아니고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도 잠시 빌려 살다가 되돌려 주고 한 줌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숙명이 아닐까! 그러니 재물이나 지위나 결혼 등에 너무 욕심 부리거나 남의 맘까지 아프게 하는 잘못은 없어야겠지? 많은 젊은이들과 결혼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꼭 보고 참된 삶과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좋을 것 같다. 흔히 인생은 연극 같다들 말한다. 나의 연극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 주고 원초적인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해 준 ㄱ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우리 내외는 모처럼 외식을 하며 미련 갖지 말고 재미있게 살자며 다짐하였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하늘엔 먹구름뿐이었지만 거리의 불빛은 화려해 보였다.(200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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