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내 고향 정자

2008.01.29 17:02

정장영 조회 수:95 추천:7

내 고향 정자(亭子)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정자는 농촌 생활에서는 떼어낼 내야 떼어 낼 수 없는 존재다. 우리 농촌마을 앞에는 으레 좋건 나쁘건 정자 한 칸쯤 자리 잡고 있어, 춘‧하‧추‧동 어느 계절이나 오가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옛날 나의 고향 ㄷ마을 앞에도 초라하지만 꽤 오래된 새막 같이 허술한 정자가 있었다. 그 정자는 어릴 적부터 매우 정이 들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즐거운 놀이터였다. 그 정자는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을 1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그 정자는 춥고 서늘한 계절만 빼고는 마을 사람들이 끊이지 않게 모여들었다. 시원한 동네 앞 당산(堂山)이 두 곳이나 있었으나 여기에 앉아 있으면 동네 앞 들녘 농사일과 마을사람들의 동정(動靜)과 출타(出他) 여부를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소식도 들을 수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안내와 상담까지도 할 수 있는 곳이요, 피서(避暑)와 무려(無慮)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낼 수 있는 남성들의 유일한 쉼터였다.   마을 어르신과 노소주민들이 모여 한가한 시간을 보내노라면 구수한 농담은 물론 옛 전설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듣던 곳이기에 늘 사람들이 끓이지 않았다. 하지만 농번기에는 한가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어린이와 노약자(老弱者)들이었다. 잠시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들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끔 텅 빈 경우도 있었다. 초여름 농번기(農繁期)가 지나 초가을이 되면 들녘에서 새를 보는 새막으로 역할이 잠시 바뀌기도 하였다. 고향을 찾아도 아는 이를 만나기 힘든 요즈음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분은 운남양반(雲南兩班)(일명: 개똥이 아빠)이다. 어른께서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는 늘 구수하고 매우 해학적(諧謔的)이며 듣는 이로부터 항상 통쾌함과 공감의 폭소를 터뜨리게 하였다. 넉넉한 살림이어서 장날이면 조랑말을 타고 6일장인 순창 장에 다녀오기도 하고 이웃마을 나들이도 잦은 분이었으며, 너무 부지런하여 날마다 동네를 세 바퀴씩 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늙도록 자식을 두지 못해서 조카를 양자로 들여서 같이 살았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이랄까, 조강지처(糟糠之妻) 몰래 씨받이로 작은 각시를 두어 겨우 얻은 아들이 있었다. 재롱을 부리며 온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귀여운 자식이지만 명이 길라는 뜻에서 ‘개똥이’라 불렀다. 요즈음에 들은 소식에 따르면 그가 이미 60대가 훨씬 넘은 노인인데 아들딸을 잘 두어 행복하계 전주에서 잘 살고 있다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고향을 떠나 각처 시골학교로 전전하면서 가정을 방문할 때에도 역시 그 부락 앞의 정자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도와주던 곳이기도 하다. 학부형과의 상담과 정보교환은 물론 주민과 마을유지와의 인사와 대화, 마을의 실태파악을 하는데도 요긴하고 가장 민폐를 줄일 수 있는 곳이 정자였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기차나 고속버스 등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보면 마을 어귀, 들녘 가운데, 강의 어귀, 산 끝자락과 기타 경치 좋은 곳엔 으레 빠짐없이 유명무명의 정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정자문화가 잘 발달해왔다. 산수 좋은 곳에 세워진 정자에는 과거 선현들의 시(詩) 현판이 걸려 잘 보존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자문화가 가장 발달한 고을은 전라남도 담양(潭陽)을 빼놓을 수 없다.  담양은 대나무 밭이 많아 죽세공(竹細工)이 발달하여 경제적 기반을 닦아 윤택한 생활이 가능했으므로 경치 좋은 곳에 정자가 많이 세워졌다고 한다. 근세 조선시대는 담양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바친 고을로 유명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근래는 죽세공산업이 석유화학 제품인 플라스틱과 값 싼 중국산 제품에 밀려서 이제 사양산업으로 전락되었다 하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정자 이름 역시 위치와 유래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이름 지어진 현판이 걸려 있어 감탄할 때가 많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정자로 귀래정, 취향정, 어은정, 용호정, 방장정, 육모정, 양호정, 미륵정, 용두정, 칠성정, 양진정, 삼괴정, 하마정, 축천정, 비안정, 구암정, 영모정, 태고정, 소남정, 은행정, 어초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자들이 있다. 이름 역시 갖가지 깊은 뜻을 지녔거나, 간혹 지명으로 쓰인 경우도 있지만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정자는 대개 이름이 없는 정자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정다운 내 고향 마을 앞 이름 없는 정자가 반세기를 지낸 동안 언제 자취를 감추었는지 매우 섭섭한 세월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난 추석 때 성묘하러 고향을 찾았더니 멋진 새 정자가 들어서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을 어귀 주차장 가에 새로 세워진 육중하고 튼튼한 목조 기와정자가 마을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옛날 정자보다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아주 든든한 모습이었다.   정자가 생기게 된 연유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순창군에서는 군의  지원사업으로 정자 없는 마을에 군비를 들여 새로이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유지관리가 잘 되어 주민과 방문객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자에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 주면 좋겠구나 싶다. 그러면 그 정자 때문에 고향을 찾는 발길이 더 잦아질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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