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호 국보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 살면서

2008.02.28 08:21

김경희 조회 수:92 추천:6

제1호 국보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 살면서

                                        김 경 희
  
  손자 보기 부끄럽게 되었다. 조상 뵙기에 참담하고 처참한 입장이 되었다. 흰 갓이라도 써야할까, 국상(國喪)을 당한 마음이 이런 것일까. 인생 칠십이면 후손들에게 칠순잔치의 술대접을 받을 나이다. 그런데 그런 손으로 숭례문에 불을 놓아 조상의 얼과 한국인의 혼을 깡그리 태워버렸다. 코리아의 얼굴이요 서울의 상징이며 고건축의 으뜸인 숭례문은 그렇게 우리 손으로 불을 놓아 없앴다.
  남대문이 다섯 시간 동안 불에 타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불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몸을 태우는 듯 처참하고 처연한 심정이었다. 행정부 책임이다. 정부의 행정에 불만을 품은 노인의 재범 행위의 결과가 아니던가.
  조선 시대 사색당쟁에도 흔들림 없었고 임진왜란과 6 ․ 25전쟁에서도 큰 탈 없어 600살이 넘은 숭례문이요 국민의 자존심 1호를 제 손으로 일부러 불을 내 없애버렸다. 숭례문은 태조 7년에 완성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 때 한글을 만들어 반포하신 2년 뒤 크게 고쳐 지은 건물이다. 민족의 자존을 지니고 필요한 곳에 당당히 거하며 예의를 숭앙하도록 하는 경전 같은 조선의 건물이었다.
  세종실록을 보면, 무려 7년 동안 혹독한 가뭄에 시달리는 대목이 나온다. 그 때 임금 세종은 지금의 광화문 거리에 가마솥을 걸게 하고 죽을 끓여 백성들을 먹이게 한다. 배고파 허덕이는 백성들의 참상을 지켜보다가 경복궁으로 돌아온 세종은, 경회루 동쪽에 버려둔 재목으로 별실 두 칸을 짓게 한다. 단 기둥을 세우지 말고 띠로 덮게 하고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지냈다. 백성들이 끼니를 이어가지 못하는데 어찌 임금이 호화로운 침전에서 편한 잠을 잘 수 있겠느냐는 것이 청년 임금 세종의 마음이요 덕성이었다.
  새빨간 불길이 숭례문을 집어 삼켜버린 뒤 그 시커먼 잔해 앞에서 비참한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랬는데도 누구 한 사람 제 잘못과 부덕을 말하는 자 없었다. 사과도 반성도 없다. 무엇 때문에 엄청난 세금을 내서 권력을 쥐어 주고 조직을 부리는 자유를 주며 봉급을 주는지 알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이라고 시간 보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며칠 뒤 정권 인수에만 마음이 가 있다. 그리고 국민의 성금으로 재건축하자는 말이나 하고 있다. 돈이 많은 당선자이니 자기 재산으로 짓는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성금은 무슨 성금이야 국민이 봉인가. 아니 금반지 내놓으라는 대통령 닮아 가는가 하는 국민의 심사를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주 풍남문이며 경기전과 객사는 안녕한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숭례문을 개방하여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북을 치며 신바람을 내더니 결국은 개방이 방임이 되고 방치가 되어 오세훈 시장 때 불 질러진 꼴이 되었다. 경기전은 현 도지사가 전주시장으로 재임 당시 무료 개방을 했다. 덕택으로 지나가는 걸인들과 부랑아(浮浪兒)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해설가는 있어도 관리자는 없다. 주인 없는 빈 집에 임금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꼴이다. 어느 서예관은 시비로 일당을 지급하는 해설사가 있다. 관리자도 몇 사람 있다. 그런데 숭례문이나 경기전은 개방이란 이름으로 공익요원 한 사람 없이 난장판이 되더니 끝내 숭례문은 불 맛을 보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은 문화재 수난기였다.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산불로 낙산사를 태우기 시작, 2006년 4월 26일에는 창경궁 문정전 일부를, 그 해 5월 1일에는 수원 화성 서장대를 그리고 숭례문마저 태워버리고 말았다. 소방당국의 불 끄는 모습도 가관이다. 건물 안에서 불이 났는데 숭례문의 기와지붕에만 물을 뿌리고 있었다. 킹콩 앞에서 물총 노름하는 격이었다.
  국정 관리를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둘째 문제다. 그러나 덕이 모자란 것은 분명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와 경제와 영어에만 매달려 있었다. 경망스럽고 덕스럽지 못했다. 그리하여 조상과 예의를 숭앙하라는 숭례문은 스스로를 불태워 잘난 척 하는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렸을 법하다. 역사는 그렇게 관련자들의 명단과 함께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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