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가을 나들이

2008.03.04 07:42

윤석조 조회 수:93 추천:8

가을 나들이           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윤석조                                                          바쁘게 보내야만 했던 추석이 지나고 북적대던 집안이 조용해지자 아내는 허전한 모양이었다. 푸른 하늘, 산들거리는 바람, 가을이 익어가는 날이 너무나 좋고, 추석에 쌓인 피로를 풀고자 집에 남은 가족들이 모처럼 드라이브 길에 나섰다.   막내가 운전하며 차가 교외(郊外)를  벗어나자 길 따라 길게 늘어선 코스모스 꽃들이 반가운 듯 한들거리고 있었고, 통통하게 살찐 나락들도 제 무게에 못 이겨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기 좋았다. 가을 가뭄으로 실개천이 된 만경강은 잡초가 강바닥을 푸르게 덮고 있고, 채소밭에서는 살수기(撒水器)에서 뿌려지는 물방울들이 무지개를 만들며 떨어지고 있었다. 맛 좋은 대추와 곶감으로 유명한 고산 땅에 이르자 도로변과 울안, 밭과 산자락 여기저기에 서있는 감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려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이 온통 노랗게 단장하고 있어 한 폭의 멋진 그림 같았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처음 본다는 막내며느리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운동회 때나 늦가을에 잘 익은 홍시를 먹었고, 어머니가 누나와 여동생 몰래 주어서 숨어서 먹던 곶감 맛이 생각나 입 안에 침이 고이는데, 아들만 생각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어른 거렸다. 삼거리에서 대둔산 가는 길을 제치고 오른쪽 길로 십리쯤 달리다보니 길이 225m 높이 55m 낙차가 47m인 호남의 나이아가라 폭포라 불리는 대아 댐이 보였다. 산기슭 고개를 넘어서자 산 그림자를 담은 푸른 물은 골짜기로 숨어버리고, 너른 호수가 굽어보이는 주차장에 이르렀다.   대아 저수지는 운암산(597m), 동성산, 위봉산의 골짜기를 인공적으로 막아 생겼고,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잔잔하고 푸른 물은 남동쪽의 동상저수지와도 이어져서, 주변의 산세와 호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완주 8경의 하나다. 방대한(5,464ha) 저수량을 자랑하며 물길은 만경강 유역의 전주시와 완주, 익산, 옥구평야의 젖줄이다. 지금은 용담댐에 저장된 물을 대아 저수지로 보내어 전북도민의 깨끗한 식수와 공업용수,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남은 물은 고산천으로 흘려보내 만경강을 정화시키며 새롭게 만들어지는 새만금 땅을 풍요롭게 하여 줄 것이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숲 속에 묻힌 대아정(大雅亭)에 올라 35년 전의 추억을 찾아보았다. 신설중학교에 발령을 받아 개척정신으로 열(熱)과 성(誠)을 다하여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전 직원이 이곳으로 소풍을 왔었다. 지금은 모두 퇴직하였으니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을 중심으로 선생님들의 옛 모습을 떠올려 볼 뿐이다. 훌쭉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서쪽을 보니 석양빛에 물든 황금들녘이 더욱 아름다웠다.    1년에 서너 번씩 돌아보는 길이지만 올 때마다 새로워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길가의 푸른 물과 구절양장(九折羊腸)인 호반도로는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서 운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받고 운전연습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달릴 때는 이 길이 비포장이었고, 이른 아침 물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아 식은땀을 흘렸던 일이 엊그제 같다. 짙은 산 그림자가 호수 위를 덮을 때 대아수목원이 있는 은천계곡을 좌측에 놓고 우암교를 지나 코스모스 길을 가다보면 위봉사, 위봉폭포, 위봉산성, 송광사를 만날 수 있는 음수교가 오른 쪽으로 저수지 수면위에 떠 있다. 산기슭에 있는 동상초등학교를 지나 우리나라 8대 오지인 아름다운 운장산 계곡으로 들어가는 긴 길을 제치고 신월교를 건넜다. 다정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산골마을들이 띄엄띄엄 있고 왼쪽으로 연석산 등산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오른 쪽 좁은 골짜기 논에 심은 고추는 아직도 짙은 녹색이고 잘 익은 벼는 노랑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였다.   구불구불 올라간 밤티재 마루에는 땅거미가 지고, 포장마차에는 두서너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저녁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아 봉우리들만 솟아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였다.   조금 있으면 떠오를 것 같은 열엿새 휘영청 둥근달이 보고 싶은데. 화심 두부가 어서 오라고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2006.  10.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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