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자유를 갈망하는 가객

2008.03.09 07:38

정원정 조회 수:87 추천:6

자유를 갈망하는 가객 (歌客)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요반 정원정                                                        “저물녘 바위 밭에 홀로 앉아/ (……)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도 그저 나비처럼 날고 싶지/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도/ 그저 흐느적/ 날고 싶지/ ” 김두수의 노래 가사 ‘나비’의 한 구절이다. 오랜 세월, 긴 생을 배회한 한 가객이 있었다.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며 바람처럼 떠돌다 어느 날, 해 저무는 산자락 넓은 바위 끝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두 발은 대롱대롱 밑으로 내린 채, 노을이 퍼진 산봉우리를 응시하며 노래를 불렀을 그의 모습을 내 나름으로 상상해 보게 된다. 가슴 저미며 흐느껴 절절히 내뱉는 그의 노래는 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 저음이다. 격정을 지그시 누르고 나직하게 떨며 목 줄기를 타고 튀어나온 소리는 섬뜩할 만치 슬픔을 담고 있다. 그는 손에 피리를 들고서,    “(……) 그윽이 피리를 불 때/ 어디선가 흰 나비 한 마리 날아와/ 피리 끝에 앉았던 기억/…… ” 쓸쓸하게 불렀을 그 피리에서는 어떤 음률이 흘렀을까. 50년 묵은 대(竹)로 만들었다는 그 피리소리는 얼마나 애절하게 바람을 타고 퍼졌을까. 아마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이 눈물 젖게 했을 것이다.    은둔의 포크가수 김두수의 노래에는 민요조로 우리 고유의 동양적인 음률이 녹아 있다. 그의 노랫말은 시(詩) 그대로이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절절하다’는 어휘는 아무데나 쓰는 게 아니라 김두수의 노래에 맞는 어휘이려니 싶다. 정말 숨이 멎을 듯 그의 노래는 아름답고 쓸쓸하고 절절하다. 작곡, 작사, 편곡에, 또 어쿠스틱 기타, 하모니카를 다룰 줄 아는 그의 연주와 노래를 듣고 있자면 끝내 뭔지 모를 눈물을 철철 흘리며 들어야 했다. 몇 차례 듣고 나면 눈물이야 거두어지지만, 먼 길을 걸어온 한 음유시인이 내 생의 뒤안길에 묻어 둔 허무를, 떨림의 저음으로 다독거려 주는 것 같았다. 여든 나이가 된  아직까지도 서럽고 쓰라린 상처를 도무지 긁어 부스럼 만들 수도 없고 털어서 날려 버릴 수도 없는 가슴 깊은 구석을 그가 알고 있는 듯, “용케 잘 살아 왔노라!” 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그의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그가 내 속내를 간절하게 듣고 있었다. 기타, 첼로, 피아노, 아코디언, 하모니카, 드럼, 호른이 어울려서 내뿜는 멜로디와 그의 심장에서 솟는 묘한 슬픈 화음이 어울려 시디 한 장이 끝날 때까지 귀를 뗄 수가 없었다. 또 이어서 들을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다. 집시의 영혼을 닮았다는 그의 노래와 노랫말을 받쳐 주는 악사들의 연주도 격정적이고 독특하다.    감두수(49)는 대학 때부터 무교동과 명동의 ‘음악 살롱’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가 1986년 첫 음반 <시오리 길>은, 일찍이 여읜 어머니의 묘소에 오가며 떠오르는 시상(詩想 )을 노래로 풀어서 수록했음직한 음반인데 가사에 자유의 갈망이 깃들어 있다 해서,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언제쯤이었을까. 경추결핵이라는 무서운 병을 얻어 3년이나 병원생활을 했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해서 1991년 3집 <보헤미안>을 냈다. 노래가 너무 슬퍼서 허무를 느꼈을까. 그의 노래에 무슨 절명의 슬픔이 담겨 있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무슨 마력이 있어서일까. 그 음반을 들은 부산의 한 팬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충격과 책임을 느낀 그는 아예 음악활동을 접고 대관령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지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평했다.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 자유라는 식상한 단어가 그의 노래에 빠져들면 싱싱한 활어처럼 파닥거리는 김두수, 그의 나레이션을 듣고 있으면 마법에 걸릴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의 힘은 자연과 자유에서 나왔다. 김두수가 지향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이다. <자유>와 <평화>는 그가 보헤미안의 삶을 살면서 이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희망의 원천이다. <자유혼>을 통해 그는 사람들이 평화를 찾아나서는 작은 여행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유일의 아트포크록 가수란 이름이 어렵잖게 붙은 김두수의 노래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골수팬이 있는가하면,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 중에도 <시오리 길>은 수집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음반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월드뮤직이라는 장르가 생겨서 김두수의 노래는 월드뮤직으로 분류돼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4집 <자유혼>이 미국에서 라이선스 제작으로 발매되기도 하고, 그 외에 영미 권에서도 또 다른 음반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5집 <열흘 나비>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광주와 전주 레코드 가게에 알아보았지만  일본 음반사가 일본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수입 판이라서 구할 수가 없단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자유혼>도 주문을 해서 가까스로 구했다. 이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일만 가지의 생각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지 않던가. 음악은 나를, 깜깜한 하늘에 찬란한 별빛만 빤짝거리는 사막에 선 순례자가 되게도 하고, 하얀 눈이 덮인 호젓한 산마루를 검은 오버 깃을 세우고 모자를 깊숙이 쓴 남자가 혼자 걷는 뒷모습을 그려 보게도 한다. 언젠가 꿈에 보았던 춥고 쓸쓸한 오솔길을 나 혼자 걸었던, 그 길이 내가 마지막 이승을 떠나면서 꼭 거쳐야할 길이 아닐까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겹쳐진다. 때로는 마치 5월의 찔레꽃 향기가 훈풍에 실려와 가슴 설레게 하듯 나를 취하게도 한다. 음악은 때로 내게 잠시 곤혹스러울 만큼 슬프게도 하지만 푸지게 행복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김두수의 노래는 내게 든든한 의지처가 되고 있다. 언제라도 내 슬픔을 퍼질러 놓을 수 있어 훈훈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오디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다렸던 듯 김두수란 가수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2008.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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