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시즌에 생각해 보는 일

2008.03.10 14:16

김경희 조회 수:80 추천:6

입학시즌에 생각해 보는 일들

                                                            김 경 희

  햇살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솔잎에도 어두운 기운이 가셨다. 겨울나무도 몸매가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계곡 얼음장 밑에는 산의 봄노래 같은 소리 길이 열리고 있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황사로 인해 입학식을 연기하는 학교가 있었다. 갑자기 하늘을 잃고 유황불 세례를 받은 것 같은 고통 속에 마스크를 하고 외출에서 돌아와서는 따가운 눈을 맑은 물로 씻어야 했다. 지구와 우주를 망가트린 죄의 형벌인가 싶다.
  옆 집 꼬마가 제 어머니 손을 잡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인사를 한다. 긴 머리 곱게 빚어 뒤로 묶어놓은 모습이 해맑다. 손자 생각이 났다. 한 이 년 있으면 녀석도 초등학교를 가야 한다고 야단법석일 것이다. 제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보내겠는가 하면서도 할아비 손잡고 함께 학교에 가서 제2의 어머니 같은 담임을 맞이한다면 하는 공상을 하게 된다. 잘 적응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공부와 성적에 석차에 신경 쓰며 경쟁의 질서 속에 은근히 부대껴야 할 것인데- 하는 짠한 마음이 한 순간 가슴을 무겁게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입장에 있을 때는 졸업식과 입학식이 한 해 한 번 있는 행사로만 여겼다. 교장 교감에게 잔소리 안 듣고 무사히 치러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손자가 학교에 입학한다니 갑자기 선생님의 키가 높아 보인다.
  압록초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사라호 태풍으로 섬진강물이 운동장과 관사로 범람했다. 교실 2층 아래까지 물이 차올랐다. 잠자던 딸아이를 깨워 어깨에 앉히고 아내와 운동장을 허리로 헤쳐 나왔다. 그 당시 나는 3학년 2반 담임이었다. 사회에서 쓴 맛을 보고 교단에 섰다. 하여 먼저 칠판에 얹혀 있던 지휘봉(매)을 버렸다. 도시락을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먹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와 장애아부터 챙겨 심부름을 시키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여러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간질환을 앓고 있는 학생을 유난히 찾아주었다. 그 해 추석, 그 아이는 내 책상 위에 밤 여섯 톨을 올려놓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그로 이해 ‘밤 여섯 톨의 기쁨’이란 글을 써 새교실 잡지에 발표해 가작으로 뽑혔다.
  봉급쟁이와 공무원 정신으로 근무하기는 쉽다. 정해진 규정 속에서 밥벌이 끝내고 휑하고 집으로 가는 식의 직장생활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에 있던, 어느 직장에 근무하든, 무슨 사업을 하든, 자기의 철학과 정신의 무늬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감동시키고 울릴 수 있는 가슴 속 범종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울림으로 상대와 주위를 깨달음의 순간으로 인도하고 안내 할 수 있을 때 인간적인 삶이 되고 선배로서 교사로서 존경의 눈금이 높아진다.
  3월이 되면 생각난다. 중학교에 입학해 12㎞, 즉 30 리 산길을 걸어서 통학했던 배고팠던 시절이. 그리고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내 인생 길에 있어 스스로를 달릴 수 있게 한 정신력의 얻음이 있었다는 감사의 마음 길이 열리기도 한다. 전주 군산 간을 통근하면서 차 안에서 독서한 보람으로 문단에 등단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선배 이야기도 떠오른다.
   지금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통학이란 말도 도시락이란 명사도 버스통근이란 언어도 소멸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자동차가 해결해 준다. 국가와 사회가 밥을 준다. 그래서일까 학생들과 교사는 살이 불어나 비만이 걱정이다. 그리하여 일부러 돈을 주고 운동하며 땀 배고 살 빼는 것을 일삼는다. 마음 같아서는 서울 사는 손자도 몇 ㎞쯤은 걸어서 학교를 다녔으면 싶다. 제 할 일은 제 손으로 하는 철저한 습관을 길들이기를 권면하고 싶다. 시골 어린이들도 통학버스를 배제하고 제 다리로 걸어 다니고  닳고 헤어진 운동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습관이었으면 싶다. 그렇게 논둑 밭길 걸어서 다닌 어린이가 성장하여 에베레스트 산도 오르고, 남극탐험 길에도 나서고 우주과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FTA 같은 일도 앞장서 해결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정했으면 좋겠다. 돈으로 학교를 나오고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신과 땀으로 살아가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적 입학식과 졸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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