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판소리

2008.03.16 17:38

김경희 조회 수:95 추천:6

영어와 판소리

                                       김 경 희

   중앙일보는 지난 1월 28일 신문 1면 머리글자를 작대기만 하게 크게 썼다. “영어 잘 하면 군대 안 간다”라고. 그 무렵 다른 신문도 영어 교육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로 지면이 넘쳤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생활영어를 할 수 있게 한다’ 든가, ‘2010년부터는 모든 고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을 영어로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어 과외 안 받아도 대학 갈 수 있게 하고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지 않아도 되게 교육정책을 펴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영어! 영어! 하니까 그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가 미국의 군정청 주무자들인가 하는 인상을 주는가 싶어 안타까웠다. 영어만 잘 해도 군대 안 간다면 그동안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자기 아들 군대 안 갔다고 표를 빼앗긴 모 후보 부자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또한 억지로 군에 입대한 연예인들 체육인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뿐인가 재벌의 자식들은 돈 걱정 없이 외국으로 건너가 영어만 배워오면 천하에 무서울 게 없는 나라꼴이 될 것 아닌가.
  이승만 전 대통령은 1895년 21세 때 영어를 배우려는 야심을 품고 배재학당에 입학한다. 영어는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를 빨리 배워 6개 월 만에 배재학당 영어 교사가 된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하고 미국서 독립운동을 해서 미국 인맥이 정치적 자산이 되어 영어 권력을 등에 업고 초대 대통령이 된다. 김구를 따돌린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오랜 미국 생활로 우리말이 어눌했다. 국어를 제대로 쓸 줄 몰랐다. 그 당시 이기붕의 아내 박 마리아 여사도 그의 영어 실력으로 남편을 부통령까지 끌어올린 사람이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척도도 높아졌다. 국제적으로 잘사는 나라의 순위로도 곧 10위권이 된다. 아니 잘사는 나라군(群)에 속해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 나라 중 영어를 잘 하는 나라는 잘 산다 그러므로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잘 하도록 하자고 이명박 대통령은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런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필리핀인가 인도인가 파키스탄인가 케냐인가 우간다인가. 오히려 그런 나라와 문명이 뒤진 나라에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한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세계 언어학자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세종대왕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 분이 만든 한글은 영어 알파벳보다 작은 받침으로 글자를 만들고 언어를 풀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정보화시대에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 편리하고  속도가 붙어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한다. 영어 이야기가 나오면 일본의 식민지시대 한글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 고생한 한글 학자들의 생각이 떠올라 죄스런 감정이 앞선다. 제 나라 글을 못 지키고 천대하는 민족이 강한 국민으로 살아남은 예는 없다.
  나는 춘향전이 쓰여 지고 판소리 고장으로 이름 높은 전라도에 태어났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과연 영어로 판소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른 것은 몰라도 판소리 하나 만은 전북의 전주에 와서 장원을 해야 행세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도 우리의 국어는 위대하고 전라도의 사투리는 영원할 것이다.
  서방산을 오르려고 용진면 구억리를 지날 때면, 권삼득 선생이 생각난다. 양반 출신의 소리꾼(비가비)으로 문중 어른들이 모여 그를 멍석말이 하여 죽이기로 결정했을 당시다. 그는 어른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은 울리고 웃겼으나 짐승은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짐승도 한번 웃겨보고 죽고 싶다고 한다. 승낙을 받은 그는 황소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한다. 드디어 황소가 웃기 시작했다. 문중 어른들은 짐승마저 웃기는 재주가 아깝다하여 살려준다. 그 후 누군가가 그에게 황소를 웃게 할 수 있는 비법을 묻는다. 그는 답한다. 소리할 때 쓰는 부채에다 미리 암소의 오줌을 묻혀 두었다가 소리가 무르익을 즈음 부채를 살짝 펴 황소 코끝에다 대고 부채질을 하니 황소가 암소의 오줌냄새를 맡고 웃는 것이라고-. 이만한 기지와 재치와 유머 감각이 녹아들어 있는 게 판소리의 무대요 소리꾼의 가슴 결이다. 영어는 할 사람이 하되 한국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영어를 잘 해도 통역을 두고 우리말을 사용함으로서 자신의 품위를 더욱 높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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