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잡초와의 전쟁

2008.03.18 20:17

김길남 조회 수:93 추천:8

잡초와의 전쟁                                  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나는 요즘 잡초와 전쟁을 하고 있다. 내가 살던 고향 장뜰 마을 앞산에 계신 조상님의 묘에 잡초가 자꾸 자라, 그것을 뽑는 전쟁이다. 뽑아도 뽑아도 한없이 솟아나는 것이 잡초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일을‘잡초와의 전쟁'이라고 명명하였다. 지금은 장묘문화가 변하여 화장하는 비율이 60%를 넘는다. 매장하는 풍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경향이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묘는 어쩔 수 없이 후손들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일 년에 한두 번 벌초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고향에 사는 사람이 도맡아 하는 경향이 있다. 옛말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잘 배우고 능력 있는 자손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그러지 못한 자손이 고향을 지키는데 어려운 조상 섬기는 일은 그들의 몫이 되었다. 우리 집안은 벌초하는 날을 미리 정해 놓았다. 그날은 서울 경기지역에 사는 사람도 모두 모여 벌초를 같이 하고 묘를 살피는 일을 한다. 그러나 계속 나오는 잡초는 그 때 그 때 뽑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문제다. 풀 뽑고자 자주 내려오라 할 수도 없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잡초는 생장능력이 뛰어나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번식력도 강해 자꾸 퍼지고 제거해도 계속 나온다. 씨는 한 번 떨어지면 몇 년 간은 계속 나는가 보다.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하게 뽑아 잔디만 있던 곳도 언제 떨어졌는지 또 잡초는 난다. 그리고 씨를 만드는 힘이 강해 조금 자라면 벌써 씨부터 만들어 여문다. 그래서 조금만 늦게 뽑으면 씨가 남겨져 다음에 또 나서 자란다. 낫으로 우듬지를 베어도 나머지에서 또 자라 퍼지며 농약을 주어도 쉽게 죽지 않는다. 사람이 가꾸려는 것은 잡초에 치어 꼼작도 못하고 죽는데 잡초는 죽이려 해도 죽지를 않는다. 보호하려는 것은 보호하는 힘을 믿고 살아가는 힘이 약해지고 죽이려는 것은 거기에 저항하여 더 강한 생명력을 갖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이런 실험을 했었다. 바랭이가 나기에 한 포기를 남겨두어 그 것이 얼마나 자라서 퍼지는가 알아보려고 뽑지 않았다. 그랬더니 여름이 지나 첫 가을이 되니 사방 2m나 되게 퍼졌다. 얼마나 무서운 번성인가? 나는 오늘도 묘에 가서 잡초를 뽑고 잔디를 옮기는 일을 하였다. 오늘은 구름이 끼고 시간도 있어 점심을 일찍 먹고 밀짚모자를 쓰고 가서 일을 했다. 작년에 잔디 사이에 메꽃이 자라 퍼져 그것을 죽이려고 농약을 발라 죽였더니 그 곳의 잔디까지 죽어버려 빈자리가 되었는데 그 곳에 어떻게 알고 잡초가 자리 잡아 퍼지고 있었다. 한 달 전에 가서 다 뽑고 앞 쪽에 잔디를 심었는데 아직 심지 않은 뒤쪽에 잡초가 더 많이 났다. 먼저 풀부터 뽑았다. 다리가 아플 것 같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둘레의 풀을 뽑고 옮겨 앉아 또 뽑았다. 구름 속에 들어갔던 해가 다시 나와 비치니 뜨겁기도 하였다. 두 시간 반을 뽑으니 일이 끝났다. 이번에는 여유 있게 심어 놓은 잔디를 삽으로 떴다. 한꺼번에 많이 떠다 구덩이를 파고 한 장씩 심었다. 이렇게 하는데 또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이와 같이 5시간을 일하고 나니 배도 고프고 힘도 없으며 손목도 시큰거렸다. 시간을 보니 6시가 되었다. 그래도 남은 풀을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지친 몸을 이끌고 봉분의 잔디사이에 난 잡초를 또 뽑았다. 그냥 놓아두면 씨가 떨어져 다음에 더 많이 나겠기에 씨부터 없애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뽑지는 못했지만 어지간히 다하고 나니 30분이 더 걸렸다. 그래서 나머지 일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끝마쳤다. 우리 묘 근처에는 다른 집의 묘들도 많다. 그러나 모두 잡초로 덮여있고 우리 묘만 잔디가 깨끗이 자란다. 내가 자주 가서 자라는 대로 잡초를 뽑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잡초와의 전쟁에서 내가 이기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풀을 뽑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내가 힘이 있어 잡초를 뽑고 있지만 더 늙어 풀을 뽑을 힘마저 없어지면 이 잡초를 어찌할 것인가? 이대로 놓아두면 풀밭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것이 걱정이다. 누가 책임을 가지고 이 잡초 제거작업을 할 것인가? 이것은 인부를 사서 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면 형식적 제거에 그쳐 풀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나면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고 뽑지도 않아 이 근처의 다른 묘들과 똑 같이 잡초로 덮일 것이다. 내가 묘의 풀 뽑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효자라 했다. 누구를 데리고 가서 같이 뽑아야 그 후손이 또 풀을 뽑지,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같이 갈만한 사람이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뿐이다. 일을 마치고 예를 올린 뒤에 산을 내려와 누님 집에 가니 누님이 두유를 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씻고 맛있게 마셨다. 힘들어 죽겠다 하니 누님께서 이제 풀 뽑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동생의 고생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래도 잡초와의 전쟁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                               ( 2007. 5.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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