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고 이름은 구마

2008.03.20 08:15

신기정 조회 수:117 추천:8

성은 고 이름은 구마
                          행촌수필문학회 신기정



오래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우스개 이야기다. 시골 아낙이 용하다고 소문난 사이비 무당을 찾아가 귀하게 얻은 아들의 작명을 부탁했다.

아낙 :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게 이름을 잘좀 지어주셔유.”
무당 : “훌륭한 사람이라!(쫑알쫑알 주문을 외더니) 옳지! 구마라고 하면 어떨까? 구할구(求) 말마(馬),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이곳저곳 헤집고 다닐 좋은 말을 먼저 구해야겠지?”
아낙 : “구마요? 저흰 성이 고씬데…….”
무당 : “고씨? 그럼 고~구~마! 거~ 좋다! 누구나 쉽게 기억하고 부르기 쉬우니 얼마나 좋아!”

고구마는 1763년 조선 영조 때 일본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종자를 얻어 부산 동래와 제주도에서 처음 재배했다고 전한다. 오랜 기간 구황작물로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준 고구마는 요즘 들어 건강식품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능력이 뛰어나고, 풍부한 식이섬유가 중성지방의 흡수를 막으면서 여분의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킨다. 하얀 진액인 ‘야라핀’이라는 수지(樹脂)성분은 변비에도 좋다고 한다. 칼륨도 많아 몸속의 염분을 배출시킨다. 삶은 고구마가 김치와 궁합이 맞은 것도 그 때문이다. 보통 식물의 생김새가 인체의 특정 기관을 닮으면 그 기관에 이로운 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구마도 잎이 심장 모양이라 여러 가지로 심장에 도움을 주는 효능이 있는 모양이다. 호박 고구마, 당근 고구마 등 종류도 다양하나 자색 고구마가 그 중 항산화 능력이 가장 좋다고 한다.

1970년대 초등학교 교문 앞에는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린 군것질거리가 많았다. 그 중 삶은 고구마는 옥수수, 칡과 함께 삼총사를 이뤘다. 수업이 끝날 즈음이면 시골 아낙들이 머리에 이고 온 양푼을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좌판을 벌렸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것을 서너 개씩 대꼬챙이로 엮어서 팔던 고구마 맛은 너무도 좋았다. 특히, 군데군데 갈라진 붉은 껍질 사이로 작고 하얀 결정체들이 송알송알 부풀어 오른 밤고구마 맛은 최고였다. 한 입 베어 물면 가을날 냄비를 안전모 삼아 수확하던 밤 맛에 버금갈 정도로 달콤했었다. 그래서 이름도 밤고구마라 했을 것이다.

이른 봄이 되면 양지바른 곳에 볏짚을 태운 재를 섞은 묘판(苗板)을 설치하였다. 씨 고구마를 소독하여 묻고 비닐을 씌워 보온을 하며 새 순을 틔웠다. 어린 잎은 밤 고구마인 경우에는 붉은 빛이, 물 고구마인 경우에는 연한 초록색을 띄었다. 길게 뻗은 고구마 줄기가 땅과 맞닿는 곳에는 어김없이 잔뿌리가 생겼다. 그 뿌리가 커져 고구마가 되므로 고구마를 덩이뿌리라 하고, 줄기가 변해서 알맹이를 만드는 감자는 덩이줄기라 했다. 영어로는 쌉싸래하고 독해서 날것으로 먹기 힘든 감자는 'potato'고, 고구마는 달콤해서 'sweet potato'라 한다.

씨 고구마에서 돋아난 묘는 잎이 3∼5개 정도 달리게 잘라 밭에 옮겨 심었다. 묘는 시든 듯하다가 이내 새 순이 돋아나고 오래지 않아 온 밭이 짙은 초록으로 채워졌다. 한여름이면 고구마는 경쟁하듯 더 멀리 줄기를 뻗어 부지런히 땅속의 알맹이를 키웠다. 이 즈음이면 본 줄기에서 30∼50Cm 이상 자라난 순을 솎아내곤 했다. 고구마순은 껍질을 벗겨 생으로 또는 삶아서 나물로 먹거나 국거리로 이용했다. 짙은 고동색이 되도록 햇볕에 바싹 말렸다가 정월대보름이나 명절 때 정갈한 나물로 쓰기도 했다. 맛도 좋지만 실제 비타민 A와 C, E는 뿌리보다 잎과 줄기에 더 많다고 한다. 껍질을 벗기고 남는 잎은 닭이나 토끼의 먹이가 되었다. 여름철에 이 고구마순은 농가에 짭짤한 부수입을 안겨주는 효자였다.

가을 문턱에 이르면 뒷산 고구마 밭은 간식창고가 되었다. 우리는 맛좋은 황토밭에서 자란 밤 고구마를 좋아했다. 넝쿨을 더듬어 캐낸 고구마는 가마니의 거친 표면이나 억새줄기에 문대어 흙과 겉껍질을 제거하고 먹었다. 때론 토끼처럼 앞 이빨로 고구마를 갉아서 껍질을 두툼하게 제거한 뒤 먹었다. 갉아내는 와중에 흙이 입안에 들어올 경우도 있었으나 침과 함께 뱉어내면 그만이었다. 한 번 베어 물면 그 달콤함이 생밤과 같았고, 입술에 구수한 전분의 미끄러움이 느껴졌다. 베어낸 자리엔 끈끈하고 하얀 진액이 솟아올랐다. 이 진액은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하여 검붉은 빛으로 변하였다. 또 손이나 옷에 묻으면 쉽게 안 지워져 주인에게 들킬 경우 꼼짝없는 증거가 되었다.

고구마는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하여 창고에 저장했다. 기다란 줄기와 여린 잎은 소를 키우는 농가에서 수거하여 엔실리지(ensilage)로 만들어 빨간 지붕의 사일로(silo)에 보관했다. 가축들의 훌륭한 겨울철 사료였다. 그리고 남은 잔재는 다음해 농사의 퇴비가 되었다. 수확 때 보면 종자용 감자는 약간 크기가 줄어든 채 뿌리 언저리에 붙어 있다. 그러나 종자용 고구마를 그대로 묻어 키운 경우에는 특이하게 어린아이의 머리통 정도로 더 커진다. 다만 질긴 섬유질이 많고 맛도 떨어져 대부분 가축사료로 이용했다.

겨우내 고구마는 날것으로 혹은 삶고 구워져 사랑방의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소화되었다. 새봄 무렵까지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한 저장 고구마는 한두 개가 썩으면 순식간에 전체로 번져 악취를 풍겼다. 이쯤이면 어른들은 성한 것을 구분하고 상처 입은 고구마는 삶아서 술을 담갔다. 발효된 고구마는 으깨어 술찌꺼기를 걸러내고 가마솥에 걸쭉하게 끓인 뒤 당분을 추가해 먹었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아이들도 맛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시큼한 맛이 감도는 별미였다.

결국 고구마는 잎, 줄기, 뿌리 모두 나름의 용도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귀한 존재다. 마지막으로 썩어서까지 텁텁한 술로 보시를 하니 그 희생정신을 높이 기려야할 것 같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시대 식량자원으로 고구마를 선택한 것도 완전식품으로서의 고구마의 가치를 더해 준다. 한때 가난의 상징이었던 고구마 밥이 포만으로 찌든 현대인들의 문명병을 치료하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도 흥미롭다. TV에서 건강에 좋다고 소개되자 고구마 값이 많이 올랐다 한다. 농수산물 시장개방의 여파로 마땅한 소득작물이 없는 우리 농촌에 고구마가 새로운 희망이 되어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한겨울에 아직도 드럼통에 장작불을 지피는 군고구마 장사가 있는 것은 어려운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헐렁한 귀마개로 한겨울 칼바람과 싸우며 군고구마를 팔던 가난한 고학생이었건, 봉투 속 고구마가 식을세라 종종걸음으로 퇴근하던 후줄근한 어깨의 가난한 가장이었던 말이다. 문득 눈 내리는 겨울밤 온 식구들이 호롱불 아래서 나누어 먹던 추억의 맛이 떠오른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뜨거운 고구마를 손을 옮겨가며 호호불어 살얼음 섞인 동치미 국물에 곁들여 먹던 맛, 그 고향의 맛이 마냥 그립다.

                                    <2007.11.15.>




주) 엔실리지(ensilage) : 목초나 옥수숫대 등에 소금을 첨가하여 젖산 발효시킨 가축의 월동용 사료

주) 사일로(silo) : 원형 기둥에 삿갓모양의 빨간 지붕을 한 목장의 사료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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