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러시아 겨울궁전에서의 만찬

2008.03.23 08:38

공순혜 조회 수:118 추천:8

  러시아 겨울궁전에서의 만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공순혜   운동화와 점퍼차림의 우리들은 스스럼없이 흰 대리석 위에 붉은 카펫을 깐 겨울 궁전의 중앙 계단을 올라가 왼편으로 돌아 Grand Duke Nikeolai 공작석 거실 식탁 앞에 앉았다.   식탁 앞 메뉴판 맨 위에는 31 May 2007. 13:00 For our guests from Korea (한국으로부터 온 우리의 손님들을 위하여)라고 환영의 뜻을 정중하게 써 놓았다. 그 아래에 메뉴를 적어놓았다. ‘봄 환상의 샐러드’ 신선한 양배추, 당근, 향기로운 후추, 신선한 오이 ‘수프(soup)’ 러시아 붉은 무 뿌리와 발효된 시큼한 크림과 함께 ‘주요코스’ 치즈와 양송이버섯을 재료로 쓴 닭고기 살점과 야채와 열 접시 크림소스를 제공함 ‘빵은 궁전 빵집에서 구운 것’ 후식으로는 시원한 과일시럽과 아이스크림, 알코올이 함유되지 않은 음료수는 ‘Rosinka’라는 150m 깊이에서 파낸 광천수와 레몬이 든 주전자를 제공함 차(茶)는 ‘Greenfield’와 특별한 커피 ‘Melitta’라는 완벽한 Arabica-Robusta를 혼합한 것을 크림과 설탕과 함께 갖춰 놓았다. 와인도 이용할 수 있다고 쓴 메뉴판을 테이블 각자 앞에 정갈하게 세워 놓았다. 테이블도 러시아 귀족들이 쓴 것이어서 문양이며 모양이 섬세하고 우아했다. 메뉴판대로 식사도 아주 맛깔스럽고 고급스러웠다. 특히 ‘Greenfield’라는 차 맛이 일품이었다. 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홍차 종류였다.  한 봉지만 타가지고 룸메이트와 나눠먹고 한 봉지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다. 후일 내게 가장 귀한 손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면 자랑하며 대접하고 싶었다. 은발의 러시아 할머니가 식사하는 동안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과 ‘아리랑’ 등을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  각 테이블에서 팁을 주기 시작했다.  연주자는 신이 나서 윙크까지 하며 신청곡을 척척 연주해 주었다.  우리는 마치 공작이나 백작부인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우아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며 1시간여 동안 즐겼다.  나도 5유로를 팁으로 내놓으며, 바디체스카의 ‘소녀의 기도’를 청했다. 옛날 우리 딸 수현이가 피아노를 배울 때 맨 처음 나에게 들려준 곡이기에 평생 잊지 못하고 좋아한다.  분위기에 맞는 드레스만 입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식탁 위 각자 앞에는 공작과 백작들, 그 부인들이 우아하고 예쁜 드레스 차림으로 환담하며 만찬을 즐기는 모습의 작은 그림 옆서 한 장씩이 놓여 있었고, 그 엽서 한 구석에 조그맣게 ‘Feel yourself!’(당신 자신같이 느껴라)라고 씌어져 있었다. 이들의 이런 세심한 배려 때문에 더욱더 비록 운동화에 점퍼 차림이었지만 마치 백작부인이 된 듯한 환상 속에서 식사를 하며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같은 일반인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공작실에서 감히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쨌든 멋있고 감미롭고 즐거운 식사였다.   이 겨울 궁전은 황제들의 주택으로 네바 강을 따라 230m나 뻗어있고 담록색의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웅장하고 우아한 로코코 양식의 궁전으로 1,056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개가 넘는 창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겨울궁전은 총 6개의 건물로 연결된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중의 하나였다.   겨울궁전은 에르미타쥐 건물의 심장부이기에 궁전의 중앙계단에는 붉은 카펫을 깔았다.  창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울에는 궁륭벽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인다.  천정에는 올림피아(고대그리스의 제우스신의 묘지 소재지로 올림픽 경기가 행해진 곳)가 그려져 있었다. 벽면에는 진실, 정의, 위엄, 지혜, 공정, 풍요를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세워져있어 이 궁전이 지상신의 덕을 행하는 이의 저택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 고대화폐전시관 등의 6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한 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다 보려면 5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그 규모와 작품의 분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3시간 정도 잠깐 둘러보았으니 수박 겉핥기식 구경이었다.  그 중 몇 작품만 유심히 관람했다.   공작시계라는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재미있는 장난감 같은 시계가 있었다. 공작, 수탉, 부엉이, 다람쥐 모양의 복잡한 기계로서 숫자 판은 버섯의 우산모양 밑의 틈 속에 숨겨져 있으며 이 기계 장치를 작동시키면 천상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며 공작이 꽁지를 펴고 수탉이 운단다. 우리를 안내해준 가이드도 5년 동안 여기에 있으면서 꼭 한 번 그 멜로디를 들었다고 했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맨발에 다 헤진 옷을 입고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안아주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림 같았다.  고대나 현대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의 마음은 다 같다.  자식들은 부모의 이런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손가락으로 금지하는 동작을 취하는 큐피트의 조각상은 귀엽고 깜찍해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건초더미’는 건초더미가 쌓여있는 농촌의 풍경으로서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마티스의 ‘춤’은 원초적인 인간고뇌의 유희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피사로의 ‘몽마르트 거리’는 전에 갔던 상젤리제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꽃을 손에 쥐고 있는 마돈나’와 ‘마돈나와 아기예수’는 르네상스 전성기의 작품들로서 환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신비로움을 주는 작품이었다.   이밖에 피카소 작품까지 이어지는 볼거리는 숫자로 셀 수도 없고 말로 다 형용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동서양, 고대에서 현대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예술품의 보물창고라 해도 좋을 듯한 에르미타쥐박물관이었다. 나중에 건강이 허락하면 다시 한 번 찾아가 더 자세히 보고 싶다. 옛날 소련정권이 그렇게 강한 나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보물들을 많이 소장한데서 힘이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가본 몇 안 되는 러시아의 도시들은 아름답고 웅장하고 멋있는 건축물과 유물로 가득 찬 곳들이었다. 위에 열거한 메뉴판은 영어사전을 한나절 뒤적여 썼고 겨울궁전과 에르미타쥐에 대한 설명은 거기서 구입해 무겁게 들고 온 책들을 참고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소감은 문외한인 나의 단편적인 생각일 뿐이다.   저녁에는 왕족들만 관람했던 그 겨울궁전 극장에서 클래식 발레인 ‘지젤’을 120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보았다.  그러나 돈이 아깝지 않았다.  발레의 본고장인 그곳에서 그것도 왕족들만 관람했다는 왕정극장에서 본 감회는 너무 감격스러웠다. 내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축복 그리고 감사를 느낀 저녁이었다.   모스크바 시대 아르바트거리 한 상점에서 산 마트로시카 목각인형은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통통한 인형을 돌려서 열면 더 작은 인형이 숨어있다.  손톱만한 가장 작은 것까지 10개가 넘는 인형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마트로시카는 러시아어로 어머니라는 뜻의 마니에서 나왔다 한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러시아 민예품인형으로 우리말로는 일명 알까기인형이라 하여 모두들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  값이 비싸고 정교한 그림솜씨 같아서 10피스짜리 하나를 사고 5피스짜리를 몇 개 더 샀다.  10피스짜리를 며느리에게 주며 이 인형을 받는 사람은 그 안에 든 인형 수만큼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무 하신다며 대경실색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네가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모스크바 그 상점에 가서 교환하던지 반품하던지 해야 한다니까 며느리는 받을 때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땅이 꺼지는 듯 한숨을 쉬었다.  순진한 며느리를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와 중학교 교장인 내 여동생도 다들 재미있어하며 형님은 좋은 선물만 사다 주신다며 고마워했다.  5피스짜리는 5유로씩에 샀다.  적은 돈으로 큰 인심을 쓴 셈이다.      모스크바의 크레물린궁, 붉은 광장, 성 바실리성당, 레닌 묘, 모스크바대학,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궁전 등 러시아 곳곳의 건축물은 다 특색이 있고 모든 건축양식의 대표물이라 할 수 있었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 러시아였다.  쫓기는 시간이 아쉬웠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어찌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비교가 되겠는가. 이렇게 여운이 많이 남는 곳인지 예전에 미처 몰라 늦게 가본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에서의 만찬은 내 생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 일로 기억하고 싶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