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내 이름은 김수영

2008.03.24 09:15

김수영 조회 수:101 추천:8

내 이름은 김수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수영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니,  사람 아닌 식물이나 동물 하물며 무생물도 저 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이 글을 쓰는 종이 역시 '원고지'란 예쁜 이름을 지녔다. PC가 일반화된 요즘에도 난 여전히 원고지에 볼펜으로 쓰고 있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가 문맹인이란  이름을 잊지 않고 만들어 놓았다. 만약 이 이름이 없었으면 이런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했을까? 내 이름은 김수영. 이런 문맹인의 이름이 김수영이다. 2남 4녀의 다섯째.-형제가 많다보니 남동생은 막둥이 난 막내였다.- 난 큰 언니가 이름 대신 막내라고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정감있고 왠지 더 귀여운 존재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막내라고 불러주는 건 식구들 중에 큰언니뿐이었지만, '정복이네 막내딸'이라는 동네 아주머니가 부르는 뉘앙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김수영! 내 이름은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언뜻들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리송한 느낌이 든다. 허스키한 내 목소리를 들으면 남자쪽으로 단번에 기울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른 형제들 이름에 비하면 난 내 이름이 좋아서 무지무지하게 황송할 뿐이다. 심지어 고맙기까지 하다. 큰 언니 이름은 '차남'이다. 남동생을 보라고 지어주신 고모부 작품이시다. 그래서인지 둘째 오빠가 태어났다. 둘째 오빠의 이름은 '칠석'. 칠석날 태어났다고 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단다. 칠석날 아닌, 한식이나 동짓날 태었났다면 어떤 이름이 되었을까? 셋째와 넷짼 '선자'와 '경자'다. 물론 이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아들을 기원했던 바람이 다분하다. 아마 이 당시(1960~70년도)엔 건넛집에 한둘은 경자, 미자, 숙자, 영자였을 테지만. 이들 두 언니의 이름도 물론 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단다. 이번엔 언니들의 이름빨이 안받았는지 딸로서 막내인 내가 태어났다. 그럼 내 이름  '수영'은 목숨 수에 꽃뿌리 영이다. 아무리 연관지어봐야 도통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오래 살란 뜻이라면 꽃부리 영자가 아니라 길영 자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우리 어머니도 모르시겠단다. 아마도 할아버지 같다고 추측만 하실 뿐이다. 이럴 때면 매번 하시는 우리 엄마 '서순원 여사'의 말씀, "자식이 여섯이니 헷갈리기도 하고, 기억 안나는 것도 많지." 물론 자식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해도 그 많은 제삿날은 다 챙기시면서 유독 나와 과련된 건 기억이 안나신걸까. 진짜 다리밑에서 주워온 것도 아닐 텐데. 혹시? 그리고 여섯 째 막둥이인 '형민'. 이름이 나온 경위는 참으로 동화 같기도 하고 시골 스럽기도 하다. 막둥이를 낳고 얼마 안되어 도사님(말인즉 스님 내지 보살 내지 땡초였는지는 난 모르겠다.)께서 시주를 받으러 오셨다가 '크게 되고  오래 살 이름'이라고 지어 주셨단다. 다른 형제 특히 셋째와 넷째언니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내 이름이 '선자'나 '경자'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름 석자를 겨우 쓰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가슴에 매달린 손수건과 내 이름표는 신기할 뿐이었다. 말로만 불리던 이름이 문자화 되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바른 생활이나 슬기로운 생활에 나오던,'영희'와 '철수' 혹은 '영수' 간혹 '수영'이란 이름이 신기한 것은 뒤로하고 당시 아이들에겐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다. 나도 내 이름이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과 똑같은 게 쑥쓰러웠다. 정말이지 유치하고 촌스럽고 흔해 빠진 이름이다. 중학교 시절의 국어책에도 내 이름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성까지도 똑같았다. 시인이었다. '김수영 시인'. 얼마나 멋지고 강렬한 시인인가. 그런데 이번엔 성별이 문제다. 난 중학생 여자아이인데 '김수영 시인'은 남자였다. 이건 웬 운명의 장난인가.  이것도 놀림의 대상이 충분했다. 그래도 내겐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셈이다. 내 이름은 시인이다. 아니 시인과 똑같다. 시처럼 멋진 이름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배웠던 '수영(水泳)'. 물론 내 이름은 자유형도 아니고 배영, 평형도 아니다. 그저 김수영이다. 강사이름은 못 외워도 내 이름은 절대 잊을 수 없던 이름. 그래서 난 더 열심히 수영을 배웠다.수영장에선 물개보다 더 든든한 이름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주고받은 명함에도 내 이름은 씌어져 있었다. 그 명함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도 가지 각색이었다. 상대방의 취향이나 기호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수영입니다." "시인과 이름이 똑같네요?" "어, 그럼 수영 잘하겠네요?" 침을 튀기며 손동작을 흉내내는 사람도 있다. 또 "예전 교과서에 나오던 이름이네요?" 하며 아주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아이들 교과서엔 어떤 이름이 나오는 걸까. 물론 아무런 연관성을 못 못찾는 것인지, 말을 아끼는 것인지, 아무런 대꾸도 없는 이들도 있다. 내 이름 석자로 깊은 인상이나 흥미를 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이름인가!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난 편지를 보내거나 일기를 쓰면 맨 마지막에 사인을 해두곤 했다. 소위 십대 소녀시절 유명해지면 해줄 요량으로  만들어놓은 사인이었다. 물론 웃어도 괜찮다. 나 자신도 무척 우습긴 마찬가지니까. 사인은 거창하지도 어려운 한자도 아니다. 그저 이름의 끝자 '영'을 영어로,'young'으로 표기해 흘려 쓰는 것뿐이다. 한글을 영문으로 표기해 젊음과 패기를 연상케 하는 의미가 아주 맘에 들어서다. 지나치게 주관적이지만 이 얼마나 국제화시대에 걸맞고 실용적이며 경쟁력있는 이름인가! 요즘 아이들 이름은 부모가 직접 지어주기도 하고 작명소에서 짓기도 한다. 살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개명을 하기도 한다. 또는 예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난 내 이름으로 삼십사 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 이름으로 살고 싶다. 예쁜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놀림을 받았던 깊은 인상을 주었던 나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내 이름 석자를 버릴 수가 없다. 결국 자신의 이름의 가치나 멋을 좌우하는 건 그 이름 자체보단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지금 내 이름을 갈고 닦는 건 결국 내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오늘도 분발할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김수영이다. 난 내 이름이 좋다. 그냥 내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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