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나무양푼도 가꾸면 쇠 양푼이 되더라/최정순

2008.05.17 23:55

최정순 조회 수:86 추천:8

나무양푼도 가꾸면 쇠 양푼이 되더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정순 사람들은 나를 멋쟁이라고 부른다. 첫인사로 “멋쟁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쑥스러워서 그냥 피식 웃고 만다. 어쩌다가 모른 체 할 수 없어, “멋쟁이가 아니라, 멋을 부리는 편이지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나는 유난히도 소지품을 챙기고 옷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입고 나설 때  산뜻한 기분이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외출할 때 입을 옷을 미리 코디해 둔다. 그러는 게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해두면 아침에 허둥대지 않게 되어 시간이 절약된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옷도 맞춰 입어야하니 일기예보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 또 그날 분위기에 맞게 가방과 구두도 챙긴다. 결코 지나치다고 생각지 않으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아이쇼핑도 즐긴다. 꼭 구입하고 싶은 것에 눈독을 들였다가 절반가격으로 세일할 때 구입하거나, 균일가격으로 내려갔을 때 구두나 가방도 가끔 구입한다. 그렇다고 낭비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옛날에 입었던 한복이 곱게 개켜져 있었다.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입고 나설 수도 없었다. 궁리 끝에 평상복으로 고쳐 입으면 어떨까하는 순간, 벌써 내 머릿속에선 예쁜 생활한복 디자인이 떠오른다. 전주 중앙동 ‘수선 집’과 남부시장 ‘용강주단’이란 한복집을 찾는다. 한복 두벌을 고쳐서 치마와 저고리를 바꿔가며 입으니 옷이 네 벌이된 셈이다. 여기에다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면 얼마든지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다. 수공은 좀 투자를 해야 하지만, 입을 때마다 새 옷처럼 기분이 좋으니, 이것 또한 멋 부리기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한복집뿐만 아니라 내가 즐겨 찾는 곳이 또 있다. 전주 오거리 ‘조일제화’점으로 밑창이 다 닳아빠진 구두를 수선하러 가면, 대개 버리고 다시 구입하라고 하지만, 떼를 써서 수선을 부탁한다. 수선한 구두를 보면, 구입가보다도 10배 이상 싸서 그렇게 옹골질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재활용’ 달인이 되었다. 글 쓰는 재주가 남다르단 말은 못 들어봤지만, 나를 보고 손재주가 남다르다는 말은 자주 듣곤 한다. 구정뜨개실로 떠 입은 여름옷을 보고, 전주 코아백화점 여성의류코너에서는 내 옷 사이즈대로 뜨개질을 해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서 거절을 했다. 한 번은 보라색 모자를 쓰고 성당에 갔더니,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은정 교수가 내 옆에 다가와 귀에 대고, ‘불여우’라며 말을 건넸다. 깜짝 놀란 내 표정을 보더니만 깔깔 웃으면서 “불란서 여배우 같다.”며 모자를 쓴 내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위트 있게 말하는 지 교수께 손으로 뜬 보라색 모자를 선물한 적도 있다.    지금도 어느 신부님의 강의가 잊혀지지 않는다. 화장하는 시간이 30분 이상 걸리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화장하는 시간이 길수록 문제라며, 이런 시간을 아껴서 성서말씀을 한 줄이라도 읽어보라고 강조한 기억이 난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겉멋과 속멋을 겸비한 사람이 되란 말씀으로 알아들었다. 멋이란 깨끗함이라 말하고 싶다. 더러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슬 머금은 목련 꽃봉오리에서 향기가 풍기듯이 속멋과 겉멋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풍겨오는 은은함을 ‘멋’라고 말하고 싶다. 깨끗함 그 자체가 아름다움인 것이다. 멋이란 건강함이라 말하고 싶다. 건강하지 못함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죽은 나무를 가꾸거나, 허수아비를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은 없다. 건강해야 멋도 부릴 수가 있다. 건강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멋이란 부지런함이라 말하고 싶다. 게으른 사람을 누가 아름답다고 말하랴. 깨끗하고 건강하게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부지런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지런함, 그 자체가 아름다움인 것이다. 찬물에 금방 세수한 싱싱한 딸기가 예쁜 크리스털 쟁반에 먹음직스럽게 담겨져 있다. 마치 속멋과 겉멋을 겸비한 품위 있는 여인처럼 보였다. 딸기가 뚝배기에 담겨 있었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격에 맞게 멋을 부리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옛말에 장맛은 하루아침에 못 만든다했지만, 지금은 그 말이 바뀌었다. 장맛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지만, 멋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단다. 그만큼 멋 이란 오랜 연습을 통해서 속멋과 겉멋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연습할 일이다. ‘기품을 지키되 사치하지 말며, 지성을 갖추되 자랑하지 말라’ 는 ‘신사임당’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진정한 멋도, 진정한 기쁨도 우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부모님의 고운 피를 이어받은 시골 태생으로, 연지 찍고 곤지 찍고 화사한 화장은 하지만, 아직 얼굴에 기계를 사용한 적은 없다. 가슴속엔 언제나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기를 자부한다. 나무양푼이 쇠 양푼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계간 ‘대한문학’에 수필로 등단하면서 당선소감에서도 이렇게 밝혔다. “유난히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겉만 멋쟁이가 아니라, 내면의 멋도 겸비한 청초한 여인이고 싶습니다.’ 라고…….                                   (2008.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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