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花雨葉雪

2008.06.09 09:03

김재환 조회 수:99 추천:16

花  雨  葉  雪 -꽃 피네 꽃 지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재환 매서운 칼바람도 남쪽에서 불어오는 꽃바람 때문에 잠시 주춤거린다. 계곡 음지의 잔설이 서서히 녹으며 실개천을 이룬다. 우수가 지나더니 어느새 경칩이 코앞이다.  버들강아지는 제일 먼저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잔설 속에서 깃털같이 가녀린 복수초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좋아하시는 인동초가 추위에 떨고 있다. 산중턱엔 생강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동네 골목길 돌담 옆엔 산수유가  노랑 저고리로 갈아입고, 개구리들은 덜 깬 겨울잠 때문인지 쉰 소리로 울어댄다. 바람은 이따금 강가의 안개를 산상으로 밀어 올린다. 산수유 꽃이 지기도 전 매화는 봉긋봉긋 피어난다. 홍매의 자태는 사뭇 여성적이다. 화사한 목련이 며칠간 뽐내며 예쁜 자목련에게 차례를 넘겨준다. 3월이 간다. 봄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시방은 꽃(花)의 계절이다. 뜨락 한 모퉁이에서는 할미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여 제자리를 지킨다. 올해 고로쇠나무는 지구 온난화 탓인지 제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인지 수액을 무척 아끼면서 병아리 눈물만큼만 준다. 제일 먼저 움이 돋은 난초는 제법 자랐고, 튤립도 땅을 박차고 빠끔히 하늘을 쳐다본다. 이슬비가 보약처럼 내린다. 초우(初雨)다. 벚꽃은 눈부시게 사나흘을 피려고 일년을 인고했고 산 벚꽃은 수채화처럼 온 산을 점으로 찍는다. 진분홍 진달래꽃과 샛노란 개나리꽃은 원색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해님에게 윙크를 한다. 청초한 배꽃은 눈부시게 소복단장을 하고, 무릉도원 복숭아꽃은 요염한 자태로 벌‧나비를 유혹한다. 시샘이나 하는 듯 자두나무와 살구나무도 서둘러 백의의 천사가 된다. 화단에선 이름값이나 하려는 듯 금낭화의 모습이 화려하다. 논에서는 자운영 꽃이 붉게 빛나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숲에선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봄을 찬미한다. 산과 들에는 철쭉꽃이 피고 정원에는 라일락꽃이 눈과 코를 마비시키며 순진하고 가녀린 소녀의 마음을 홀린다. 보라색 등나무 꽃은 치렁치렁 열아홉 큰 애기 댕기마냥 늘어지고 창백한 박 덩이 같은 수국과 귀티 나는 작약이 의젓하다. 나른한 4월이 가고 있다. 앞산의 층층나무가 소박한 부챗살 같은 하얀 꽃을 피우고 산비탈 언덕위의 찔레꽃과 아카시아 꽃이 머리를 지근거리게 한다. 담벼락 너머엔 빨간 넝쿨 장미꽃과 백장미 흑장미가 자존심 대결을 하노라 한 치 양보가 없다. 봉황새만이 앉는다는 장독대 뒤 오동나무의 진한 남 보라색 꽃이 귀족스럽다. 모란꽃은 시원한 바람결에 졸음에 겨운지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때죽나무는 은방울꽃처럼 앙증맞게 작은 초롱을 만들었다. 박달나무는 또 다른 흰 도라지꽃을 피웠다. 들판엔 이름 모를 온갖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계절을 충만하게 살찌운다. 5월이 가고 있다. 지금 서해안 어느 바닷가엔 핏빛보다 붉은 해당화가 떼 지어 피어있을 게다. 하늘이 낮고 습기가 많은 여름날이 오면 외로운 싸리 꽃과 청초한 도라지꽃이 동무를 할 것이며, 산골짝 이름 모를 적막한 계곡의 산 나리꽃은 외롭게 홀로 서서 인기척을 기다린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을 닮은 자귀나무 꽃은 무지개 색으로 현란의 극치다.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고 마는 연약한 나팔꽃, 장마 속에 피고 지는 은은하고 끈질긴 무궁화, 기린처럼 큰 키를 자랑하는 도도한 접시꽃, 막내 이모가 손톱에 곱게 물들여주던 봉선화, 화무십일홍을 비웃으며 석 달 열흘이나 꽃을 피우는 백일홍. 화단에서는 해당화보다 더 붉은 칸나가 정염을 토한다. 고매한 글라디오라스는 단아함을 뽐낸다. 흙탕물 속에서 품위를 지키는 연꽃은 이 세상 온갖 번뇌를 품에 안고 삼라만상을 정화시키고 의연히 제자리를 지킨다. 바람결 위로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떼 지어 나르면 작열하는 태양빛도 슬그머니 높아가는 푸른 하늘 속으로 연기처럼 빨려들어 간다. 여름(雨)은 그렇게 갈 것이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태양의 아들, 해바라기 꽃이 즐거워 할 때 이효석의 하얀 소금밭인 메밀꽃은 오히려 처연한 자태를 보일 것이다. 달밤에 보이는 언덕배기 달맞이꽃과 초가지붕의 박꽃은 청승스럽고, 사루비아 꽃은 에스파냐의 집시처럼 정염의 불을 지필 것이다. 토방 아래선 귀뚜라미가 계절의 변화를 알리려고 한 통의 엽서를 부쳐온다. 모든 꽃들의 잔치가 파할 무렵, 서릿발이 내릴 때 고고한 국화는 자태를 선  보인다. 철새는 날아가고 또 날아오고 그리도 무성했던 잎새들은 작별을 고한다. 가을(葉)은 그렇게 갈 것이다. 산록에 서설이 내리고 문풍지가 북풍에 시릴 때 지상 최고의 아름다운 꽃 상고대에는 수 만개의 눈꽃이 핀다. 나무 위에, 마른 풀포기 위에, 바위 위에……. 흰 모시적삼처럼 희고 고운 눈꽃이 세태에 찌들고 병든 우리 가슴속에 자리하여 아낌없는 평안을 준다. 겨울(雪)은 그렇게 깊어 갈 것이다. 또다시 봄은 어김없이 올 테고 돌아오는 해에도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또  또……. 몇 번이나 꽃이 피고 지고 윤회하는 이 꽃들과 이름 모를 다른 꽃들의 삶을 볼 것인지.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데도 순서가 있는데 올해부터는 그 순서가 서서히 파괴되고 있었다. 자연의 순리가 무너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이리라.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환경파괴의 중지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경고하는 것 같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방 지구촌 여기저기서 경고의 신호탄이 터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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