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뻥튀기

2008.06.09 19:24

신기정 조회 수:95 추천:10

뻥튀기                             행촌수필문학회 신기정 멸치를 조기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창시절의 난센스퀴즈 문제로, 정답은 '튀밥기계에 넣어 튀긴다.'였다. 한껏 부풀려 덩치는 크지만 침만 닿으면 찌그러드는 튀밥은 사실 허풍쟁이의 표본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겐 가난한 시절부터 함께해 온 영원한 친구로 모든 허물이 용서가 된다. 우리나라에선 뒷전으로 밀린 튀밥기계가 최근 외국에서는 새로운 전성기를 누린다고 한다. 우리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이 튀밥기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가난했던 시절처럼 변변한 군것질거리가 없는 현지 주민들에게 튀밥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한다. 동네 어귀 목 좋은 곳에 튀밥장수가 자리하면 온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튀밥장수는 먼저 가지고 온 재료로 튀밥을 튀기며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그렇게 두어 번‘펑 펑’거리면 어른들도 쌀, 보리, 옥수수 한두 되를 들고 나타났다. 순식간에 기계 옆에는 깡통이나 나무 되에 곡물들이 소담하게 담겨져 차례를 기다렸다. 쌀 튀밥은 보리처럼 껄끄러운 이물감이 없어 으뜸으로 쳤다. 독특하기론 큰 덩치의 떡 튀밥이 최고였다. 명절 뒤 쑥떡이나 인절미 절편은 대나무 채반이나 석작에 보관하였다. 가끔 연탄불에 굽거나 쪄서 콩가루나 설탕, 조청 등을 곁들여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것들이 검푸른 곰팡이를 제거하고 햇볕에 말렸다가 떡 튀밥으로 환생했던 것이다. 튀밥기계의 몸통은 잠수부들이 쓰는 동그란 헬멧을 닮았다. 알곡들이 적당히 볶아지면 튀밥장수는 아이들을 먼발치로 물렸다. 이어 기다란 수거통을 기계에 끼운 뒤 '뻥이요' 소리와 함께 출구를 열었다. 기다림의 끝은 하얀 연기와 솜뭉치로 변한 튀밥들의 향연이었다. 수거통을 벗어난 튀밥은 귀를 막고 먼발치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달려와 순식간에 해치웠다. 수거통 안까지 손을 뻗치는 아이도 있었지만 인심 좋은 튀밥장수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기계에 남아 있는 덜 튀겨진 옥수수는 딱딱하지만 훨씬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그 덕에 오래지않아 동네 가게에서 원형대로 볶아진 옥수수를 볼 수 있었다. 튀밥의 위상이 대단한 것은 곡식이 떡이나 술 이외의 용도로 쓰인 몇 안 되는 사례라는 것이다. 당시엔 '곡식을 볶아 먹으면 복이 달아난다.'는 금기도 있었다. 추수 뒤 바닥의 이삭까지 주웠었기에 귀한 곡식 절약을 위해 그런 말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도 튀밥만은 예외로 쳐주었으니 이는 튀밥이 세대구분 없는 영원한 한국인의 간식거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끔 튀밥장수가 들르지 않으면 5일 장터에 자리한 튀밥장수를 이용했다. 세월이 흘러 튀밥기계를 달구는 불은 장작불에서 석유를 거쳐 가스버너로 바뀌었다. 일일이 손으로 돌리던 기계도 전동모터가 대신하였다. 그러나 특유의 폭발음과 함께 구수하게 퍼지는 튀밥 냄새만큼은 변하지 않는 풍경으로 남았다. 과자라곤 군용 건빵이나 눈깔사탕이 전부였다가 차츰 종합 선물세트까지 나오자 튀밥의 인기도 차츰 시들해졌다. 그 무렵 나온 것이 토막난 국숫발로 동그랗게 튀겨낸 뻥튀기였다. 뻥튀기는 친구 생일날 선물포장을 부풀리는데 쓰기도 하고 온갖 동식물 모형이나 가면을 만들기도 했다. 실제보다 워낙 부풀린 까닭에‘뻥치지 말라'는 말은 곧‘거짓말 말라’는 의미가 되었다. 요즘에는 더 진화하여 낮은 칼로리로 취식욕구를 달랠 수 있어 다이어트에도 이용된다고 한다. 가난한 시절에 시각적 포만감으로 배를 불려주던 뻥튀기가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 빼는 용도로 쓰이는 것도 흥미롭다. 장사꾼 입장에서 뻥튀기는, 부피는 크고 값은 싸서 결코 좋은 품목이 아니다. 그런데도 차가 밀리는 외곽도로에서 여전히 노점상들의 단골메뉴로 활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런 저런 일들로 뻥튀기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추억 되살리기’때문은 아닐까 싶다. 부담 없는 가격과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외국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발전상은 실로 뻥튀기 이상의 기적이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됐다가 반세기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자랐으니 어찌 상상이나 되겠는가? 고난의 보릿고개를 넘어 주린 배를 뻥튀기로 채우며 진짜 뻥튀기 같은 풍요를 일군 우리 부모세대에게 감사할 일이다. 오늘 저녁엔 한 뭉치 푸짐하게 사다가 뻥튀기에 그려지는 추억들을 맛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침에 젖어 쪼그라든 뻥튀기를 먹으면서는 풍요 이면에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3
전체:
214,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