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 blue>가슴이 띠뜻한 사람들

2008.06.15 10:51

오명순 조회 수:95 추천:9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야간반 오명순 돈이라는 것은 사람을 웃기고 울리기도 하는 소중하면서 또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친구다. 더 많은 돈을 갖고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기도 하며 적게 가지고 있지만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랑을 퍼 주는 사람들도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돈을 내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거나 친척이거나 어떤 관계로 이어져 있다면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동정심에서 할 수도 있고 사랑으로 대가 없이 주고 행복하기도 하다. 때로는 자기 이름을 위해서 기부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진정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교회청년부에서 뜻있는 일을 하겠다고 일일찻집을 계획했었다. 이익금으로 희귀성 난치병환자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냥 돈을 걷어서 도와주어도 되지만 좋은 일에 많은 사람이 동참하면 보람도 있고 사랑이 더 많이 퍼져나가리라 하는 마음에서였다. 사랑은 나누면 커지니까. 암이나 소수의 특정질병은 건강보험에서 많은 혜택을 주지만 난치병인데도 질병 분류에서 애매하게 제외되어 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참 많다. 내 딸도 그런 경우였었다. 몸이 아프면 육체의 고통도 크지만 장기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들은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환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크다. 그럴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그 빛이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어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에게 사랑이 담긴 마음으로 손을 잡아 주면 된다. 티켓을 배정받았다. 어떤 분들은 요즈음 누가 티켓을 사 주겠느냐며 본인이 사서 나누어 주며 초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우기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아 왔다. 내 믿음이 깨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티켓을 내밀어 보았다. 물론 돈은 내가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 티켓을 팔기 위해서라기보다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일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반응이 없었다. 티켓 한 장 값은 삼천 원이었다. 나의 믿음은 무너지고 그들 속의 나의 존재감도 어디론가 흘러 내려가고 남은 것은 허전함뿐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서 더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돈은 주고 티켓은 다시 돌려주었다. 그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진희가 아프고 3년쯤 되었을 때였다. 처음에 신장에서 시작되었던 병이 척수를 통해 이동해서 뇌로 들어가서 뇌수막염이 되었다.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동안 진희는 생사를 넘나들며 나의 애간장을 태웠다. 의료진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었다. 문제는 치료비였다. 보험혜택이 안 되는 약이 대부분이었고 보험이 되더라도 기준치 이상 초과하면 본인 부담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알았다 해도 치료를 중단할 수도 없는 초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의료진도 당황하는 듯했으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며 약이 없으면 외국에서 약을 구해오기도 했었다. 진희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애써 주던 그 분들은 참으로 히포크라테스정신을 가지고 계신 참 의사들이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참 많은 감동을 주신 분들이다. 그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며 잊지 못할 것 같다. 3년여 동안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나의 통장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아빠없이 나 혼자서 그때까지 진희를 지켜온 것도 기적이었다. 1주일에 4~500만 원씩 나오는 치료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이라서 1주일마다 입금해야 되는데 2주를 넘기자 원무과에서는 빚 독촉하듯 날마다 목을 조여 왔다. 돈이 없으면 집에 가라는 것이었다. 병원이 사람을 살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돈 앞에서는 참으로 차갑고 냉정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야속한 생각에 눈물만 나왔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는데 돈이 없어서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니 나의 무능에 몸부림쳤다. 지금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도움의 손길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다. 지금은 내가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되겠노라고 기도했었다. 이제는 외롭게 나 혼자서 하지 않고 주위에 희망을 찾아 나섰다. 진희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으므로 부끄러운 것도 없었다. 이미 자존심 따위는 나에게는 사치였다. 엄마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병원의료사회복지과에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극동방송국에 사연을 알리고 방송해 보자고 했다. 사연을 들은 청취자들이 통장으로 입금시키기 시작했다. 5천 원, 만 원......10만 원, 20만 원...... 나는 통장을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우리 모녀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사랑을 전해 주는구나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그 분들이 돈이 많고 쓰고 남아서 보내 준 것은 아니리라. 그 분들에게도 돈은 소중하지만 사랑을 나누고 이웃에게 희망을 주며, 그게 우선이어서 그리 했으리라. 작은 빗방울이 모여서 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천사들의 도움이 있었다. 군복무 중이던 아들의 부대에서는 100여장의 헌혈증과 함께 성금을 보내 주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분이 기부했다고 동사무소에서 돈을 보내왔다. 병원 측 전문의들의 모임에서 성금을 모아 주며 나의 손을 잡아 주었을 때 난 또 울고 말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녀를 위해 기도하며 희망을 실어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저절로 힘이 솟았다. 그 때 나는 누가 손가락으로 밀어도 쓰러질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 뒤 2년여 병원생활을 더 하고 진희는 결국 떠났지만 그 때 받은 사랑의 힘은 나의 삶의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사랑을 꺼내어 보며 가슴을 채운다.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나의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랑을 받아 보았고, 나도 그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2008.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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