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라디오와 엄지발가락

2008.06.18 05:53

최정순 조회 수:94 추천:9

라디오와 엄지발가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정순 침대 머리맡엔 몇 권의 책과 작은 라디오가 놓여있다. 잠 못 이루는 늦은 밤이나 새벽, 혹은 밖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켠다. 눈을 감고 누워서 스위치를 켜거나 끄려고 더듬더듬 얼마나 엄지발가락을 괴롭혔던가.  유일하게 음악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라디오다. 음악이 3초만 멈춰도 이 세상은 암흑과 같다고 누군가 말했듯이, 나 역시 음악이 없는 생활이란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 같다고나 할까. 나는 그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 벌레인지도 모른다.       내가 음악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KBS어린이합창단원 모집에, 우리학교에서는 배정자, 국승희 최정순 등 3명이 뽑혔었다. 그때의 친구들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몹시 감명 받았던 모양이다. 그때 불렀던 ‘산바람 강바람’(박태현 작곡)이란 동요는 유년시절 내 감성을 싹틔운 시발점이었다. 중학교 때 음악시간은 유년시절의 내 감성을 더욱 살지게 했다. 스와니 강, 금발의 제니, 들장미, 보리수 등등 수없이 많은 곡을 원어로 외웠고, 악보 보는 법이며 이론을 남보다 먼저 터득했으니 음악선생님 눈에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지금도 노랫말이 원어로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중‧고등학교시절이야말로 열심히 공부할 시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교내 성악콩쿠르를 통해서 경쟁이란 어떤 설렘인가를 처음 맛보았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의 그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현제명 작곡 ‘고향생각’을 불러 2등을 차지했던 일을 더듬으니 갑자기 숙연해진다. 피를 말리는 경쟁은 정말 싫다. 수동적인 내 성격 탓이다. 내 나이 40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전국기능올림픽이 전주건설공업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적이 있었다. 성공리에 마친 학교 측에서 100여명이 넘는 교직원 부인들을 초대한 몇 백 명이 모인 강당에서였다. 나운영 작곡 ‘아! 가을인가’를 부른 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그들을 놀라게 했었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사모님의 소질을 왜 살려주지 않았느냐는 선생님들의 채근에 남편은 한동안 시달렸단다. 지금은 다 지워진 얘기지만, 적극성이 부족한 내 자신의 삶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음악이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시간예술이다. 이순에 접어들면서부터 희미하게나마 내 감성을 싹틔웠고 더욱 살지게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궁리 끝에 찾은 곳이 다행이도 전북도립국악원이었다. ‘한국무용’반 문턱을 넘나들면서 지난날의 내 젊음을 되찾아보려고 발버둥 친 일이며, ‘고수’ 반과 ‘판소리’ 반 문전을 들락거리면서 응어리졌던 마음을 북을 치며 날려버렸고, 못 이룬 내 꿈일랑은 판소리로 풀어 내렸다. 세월도 흘러 벌써 10년에 가깝다. 그러나 도전정신과 경쟁심이 모자란 내 성격 탓에 나는 무엇 한 가지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지만, 그런대로 행복했다고 자위한다.       인간생활의 기본요소가 의식주(衣食住)라면 음악에도 3대 요소가 있다. ‘리듬’ ‘멜로디’ ‘하모니’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나는 3대 요소 중에서도 화음(하모니)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화음이란 높낮이가 다른 2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잘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다. 고로,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가정은 가족과 더불어, 사회는 이웃과 더불어, 세계는 이웃나라와 더불어 화음을 이루어 갈 때 글로벌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합창을 할 때는 여러 사람이 부르지만 한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가며 자기 소리가 튀지 않도록 불러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합창이라면,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로지 나, 내 가족, 우리나라만 잘살면 된다는 욕심 속엔 불협화음만이 있을 뿐이다. 음악을 통하여 화음의 삶을 살아냈으면 한다. 음악을 들으면 나는 몸자세부터 달라진다. 걸음걸이, 옷매무새, 마음가짐까지도, 음악이 내 몸에다 기를 불어넣는다. 음악은 마치 물과 같아서 찌든 내 마음, 내 영혼까지도 깨끗이 씻어준다. 마리안 앤더슨의 ‘깊은 강’이란 흑인영가를 들은 뒤 미워했던 동생을 용서할 수 있었고, 이은상 작사 ‘가고파’를 들으면서 절교했던 친구한테 전화를 걸 수 있는 용기가 생겼었다. ‘어미이징 그레이스’를 들으며 내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기도 했으니, 음악은 빵으로만 살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인 양식이 아닐 수 없다.   6월의 단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한가한 오후다. 턱을 손으로 감싸고 창밖의 빗줄기를 헤어본다. 라디오에서 ‘체리 핑크 맘보’ 음악이 흐르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는 라디오 스위치를 켜리라. 일어나기 싫으면 누운 채 엄지발가락으로 더듬어 라디오 스위치를 끄리라.    (2008.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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