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에서 열린 수필의 날 행사 참관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에서 수필공부를 한지 5개월째다. 수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하였지만 교수님의 지도로 스무 편 가까이 쓰다 보니 재미도 소록소록 생겼다. 어쩌다 잡지에도 한 편 실어 주었고 모 주간지도 몇 편 게재해 주었다. 교수님의 아낌없는 지도와 격려의 덕이다. 이제 겁도 없이 재미를 붙여가는 중이다. 제8회 수필의 날 행사가 열린다하여 등단도 안한 문외한이라 참여할 수 없는 모임이라 여겼다. 그런데 큰 행사에 참석하여 수필의 세계를 느껴 보고 유명한 수필가들도 만나는 것이 작품을 쓰는데 자극이 된다고 권유하여 참석 하였다. 대구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였다.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북도 여러 곳 사람들이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김학 교수님에게 배운 사람들이다. 벌써 7년째 공부하였고 등단한 인원도 90명이나 되었다. 너무 뒤떨어져 주눅이 들었다.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몰라서 못한 것을 어찌하랴. 대구 프린스호텔 별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국민의례에 이어 참석자 소개를 하였는데 평생 수필을 위해 애쓰신 원로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김학 교수도 남보다 먼저 소개를 하는 걸 보니 문단에서의 그 위치를 알만 하였다. 이응백 교수도 처음 보았다. 키도 작은 분이 그리도 당찬 강의를 하셨을까. 옛날 TV에서 보았던 국어강의를 생각하였다. 올해부터 수필인상을 제정하여 시상하였다. 수상자는 수필을 위해 생애를 바친 원종린, 윤재천 두 분이었다. 그 분들의 약력을 보니 받을만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각각 수필문학상을 제정하여 상도 주고 전집(6~7권)을 낸 분이었다. 수상 소감도 듣고 작품도 낭송하였다. 참 잘 쓴 작품이었다. 이제야 수필에 입문한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한심한 꼴찌다. 제2부로 네 팀이 나와 축하공연을 하였다. 고전무용 부채춤을 공연하였고 피천득의 ‘멋’과 조경희의 ‘장마단상’이라는 수필작품을 낭송하였다. 색소폰 연주를 한 뒤 꾀꼬리 같은 고운 목소리로 성악을 하여 갈채를 받았다. 제3부는 김봉군 교수의 ‘21세기 한국 수필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특강을 들었다. 21세기는 수필이 문학의 주류를 이룰 거라 하였다. 글을 읽지 않으려 하니까 원고지 7~8매 정도의 짧은 수필을 써야 한단다. 상상과 추상을 구체화하여 숙성된 문장으로 골계미가 있게 쓰라고 했다. 앞으로는 몇 명이 모인 소단위 그룹 활동이 많을 거라 하였다. 늦게 시작한 행사가 진행도 더뎌 8시 반에 저녁을 먹었다. 주최 측이 정성들여 차린 음식이라 이웃 친지들과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먹었다. 무대 앞 스크린에서 수필집을 소개하였다. 수필 제목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터라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폈다. 모래밭에 쓴 수필, 즐거운 소음, 풍경소리 들리는 길,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내가 나인 이유, 하얀 거짓말, 일부러 길을 잃다, 매실의 초례청 등 재미있는 이름이 많았다. 이를 참고하여 나도 제목을 붙여야겠다. 제4부에서는 친교의 시간으로 장기자랑을 하였다. 심사하여 상도 준다고 하였다. 여러 팀이 나와 노래를 불렀는데 연습도 없이 흔들며 노는 것 같이 하였다. 이응백 교수가 부른 노들강변 가락과 부경문학 팀의 노래가 그래도 나았다. 우리 행촌수필 팀은 미리 연습도 많이 하였고 의상도 갖추고 나와 우리가락을 불렀으니 단연 돋보였다. 자리에 앉은 우리들도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고 추임새도 넣어 흥을 돋우었다.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행촌수필 팀이 대상을 받아 모두 기뻐하였다. 수필을 배우게 되어 이런 자리에 참석하니 영광이었다. 새로 느낀 점과 깨달은 것이 많았다. 오랜 세월 수필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미천하여 설 자리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거북이처럼 나아가야겠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 2008.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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