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속빈 여자

2008.09.11 05:37

최정순 조회 수:96 추천:8

속빈 여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수필창작 목요반 최정순 목이 칼칼할 때 살얼음이 앉은 식혜 한 잔의 맛을 어찌 청량음료에 비할까. 식혜의 맛과 멋을 아는지라, 우리 집 냉장고에는 내가 만든 식혜가 사철 대령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음료인 식혜는 숭늉 만들 듯이 밥을 푼 솥에 물만 부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식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우려내야하고, 걸러내야 하며, 가라앉혀야하고, 마지막엔 밥알이 다 삭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비로소 식혜가 만들어진다. 식혜의 감칠맛을 내는 핵심은 엿기름이다. 엿기름 속에 들어있는 아밀라제라는 효소가 밥의 전분에 작용하여 말토스와(엿당, 맥아당) 글루코스(포도당)등을 생성하면서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효소는 소화가 잘 되게 도와주며 요구르트처럼 장내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또한 몸속에 맺힌 멍울을 풀어주는 작용이 뛰어나기 때문에 옛날부터 출산 뒤 임산부들이 흔히 겪는 유방통 등을 다스리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젖의 양을 줄어들게 하므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동안에는 피해야 한다. 먼저 엿기름을 물에 2~3시간정도 담가 우려낸 다음에 체로 걸러야한다. 걸러낸 엿기름물을 맑게 가라앉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다 붓고 5~6시간정도 보온밥통 스위치를 켜두면 밥알이 삭아 동동 뜬다. 마지막으로 생강을 넣어 팔팔 끓이면 된다. 거르고, 가라앉히고, 삭히고, 기다리는 힘든 과정을 이겨 내야만이 독특한 맛을 내는 식혜가 만들어진다. 밥알을 손으로 으깨보면 잘 삭았는지, 아직 덜 삭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식혜를 만들면서 나는 깨달은 게 있다. 인생이란 게 바로 식혜 만들기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걸러냄이다. 물에서 엿기름이 우러나지 않으면 그냥 물일뿐이다. 우려낸 엿기름 찌꺼기를 걸러내듯, 마음속에 자리한 잡다한 생각들을 걸러내야 한다. 잘 여과된 생수처럼 맑은 심성을 흘려보내는 일이다.   인생이란 가라앉음이다. 가라앉은 맑은 엿기름물이 밥알을 삭히듯이, 분노에 찬 마음이 가라앉은 다음에야 비로소 옳고 그름이 보일 것이다. 분노를 삭이는 가라앉은 마음을 평상심으로 살아야 하는 삶인 것이다.   인생이란 기다림이다. 말갛게 잘 삭은 식혜를 만들기 위해 지난 날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 어머니들은 꼬빡 밤을 새워 얼마나 마음조이며 기다렸던가.  더 두면 재를 넘어 시큼해지고 덜 두면 밥알이 삭지 않아서 식혜가 되지 않는다. 세월을 먹고사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초승달은 기다려 둥근 보름달이 되고, 둥근달은 이울어 그믐을 지나 다시 초승달이 되기를 기다린다. 나도 내일을 기다린다. 또 내일이 오면 또다시 내일을 기다린다. 마냥 기다리며 산다.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닌가.   식혜와 인생, 그것은 한마디로 결국은 기다림과 삭임이라 말하고 싶다. 전분이 맥아당으로 변화되어야 식혜가 된다. 싹이 튼다. 밀알 하나가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곧 내가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려내야 하고, 걸러내야 하며, 가라앉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삭히는 일이 말같이 쉽지 않다. 휴지통을 비우듯이 나를 다스리는 일이 쉽다면야 누구나 다 달인이 되거나 성인이 될 것이다. 잘 삭은 식혜, 속이 빈 밥알은 무희처럼 춤을 춘다. 춤을 추는 밥알을 보면 나도 따라 춤을 추고 싶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마치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 손을 털고 다 내어주면 속빈 밥알처럼 나도 저렇게 가벼워질수 있을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달을 바라본다. 초승달이 차올라 둥근 보름달이 떴다. 다시 몸을 덜며 비워가는 그믐달은 지고 새벽이 깨어난다. 인생의 밥알이 저런 것이고, 여인의 삶이 저런 것인가. 다 삭여주고 속빈 밥알 동동 떠서 춤을 추는 식혜속의 밥알. 아파트 옆 노인정이나 요양원에서 볼 수 있는 노인들은 마치 식혜속의 하얀 밥알들이나 같다. 우리의 어버이들이 이 가을, 잘 익은 햇볕 아래 나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유독 할머니가 많다. 속 다 내주고 껍질만 가볍게 나앉은 ‘속빈 여자’, 그분들로 하여 우리의 삶은 맛을 냈으니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성스럽지 않은가. 비어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무한한 자유의 충만이다. 그러니 먼저 비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나는 잘 삭아서 맛을 내는 식혜속의 밥알 같은 ‘속빈 여자’가 되고 싶다.                          (2008. 9. 10.)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
전체:
214,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