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사랑의 근속상

2008.09.24 16:37

송병운 조회 수:80 추천:12

사랑의 근속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송  병 운                              며칠 전 졸업생 은미가 다녀갔다. 회의 중이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다음에 뵙겠다는 쪽지와 결혼 청첩장을 놓고 갔다. ‘아, 드디어 이 녀석이 결혼하는구나!’ 반가웠다. 그런데 쪽지 밑에 조금은 당혹스러운 글이 첨부되어 있었다. "선생님! 방석에게 10년 근속상을 주어야겠어요. 10년 전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해드린 것이었는데요. 고맙습니다."   당혹스러웠다. 아니 이 방석이 벌써 10년이나 되었단 말인가? 이 방석이 나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10년이라니……. 10년 동안 사용해온 방석이라는 사실도, 은미가 선물한 것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끔 정성스러운 베풂을 잊고 사는 경우가 있어 그 분들에게 미안할 때가 참 많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무례함은 나뿐만 아니라 가끔 주변에서 목격되기도 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도 그런 경우가 더러 있다. 학교는 교사와 학부형 그리고 학생이라는 삼각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조직체이다. 최근에는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 보다는 시빗거리를 찾는데 정성을 쏟는 사람들도 있다. 학부모나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의 처사가 섭섭하고 불만인 상황이 많겠지만,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때론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섭섭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이른 아침,  상당히 흥분한 학부형 한 분이 교무실로 찾아와서 어느 선생님을 찾았다. 정년을 앞둔 원로 교사였다. 소파가 옆자리에 있기 때문에 두 분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학생의 복장이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지적하며 나무랐다. 그런데 이 학생이 혼잣말을 하더란다. “지가 뭔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 .”   불행이도 그 말을 이 선생님이 들으셨단다. 혹시 일부러 들리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가 난 선생님은 학생을 교무실로 데리고 와서 크게 꾸중을 하며 목 부위를 한 대 때렸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이 아버지는 “내 자식이 잘못은 했습니다. 하지만 왜 말로 안하고 때렸지요? 나는 아버지이지만 내 자식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는데 왜 때립니까? 화가 나서 잠도 못 잤고, 출근길에 이렇게 쫓아왔습니다.” 아들은 아무 표정 없이 아버지와 교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잘못을 저지른 아들보다 한 대 때린 교사에 대한 분노로 흥분되어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는 40대 초반의 학부형 앞에서 그 교사는 할 말을 잃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더니 “그래요. 제가 잘못했네요. 감정이 너무 앞섰던 것 같군요.” 개선장군처럼 사과를 받고 나가는 그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른 선생님들은 허탈감에 빠졌고 교무실엔 적막감이 흘렀다. 저 아버지 밑에서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정확한 판단력보다 오직 감싸기만 받은 저 아들이 어른이 되어 어떻게 살아갈까? 저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과연 효도를 받을 수 있을까? 과잉보호를 받은 자식은 불효자로 성장한다는데, 차라리 아이 앞에서 진솔하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들에게 얼마나 큰 교육이 되었을까? 교권이 서지 못하고 나뒹구는 이 나라의 교육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비뚤어져가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정말 학교만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그 동안 쌓였던 갖가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터져 나왔다. 심란한 마음에 힘이 빠져 있을 때 은미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인사를 하러 찾아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새 방석을 선물로 가져왔다. 헌 방석을 걷어내고 정성스럽게 새 방석으로 바꿔주며, "선생님! 이 방석도 10년 근속상을 주셔야 돼요!" 하며 씨익 웃었다. 부끄러운 듯 인사를 하고 떠나는 신혼부부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항상 힘들게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제자들도 있으니 더욱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신부가 된 은미의 행복을 빌었다. ‘나도 너에게 예쁜 근속상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마음만큼이나 멋지고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10주년, 20주년, 30주년 ‘사랑의 근속상’을 주고 싶다. ‘은미야, 멋지게 살아다오!’                        (2008.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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