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노하기를 더디 하는 종의 리더십

2008.09.29 03:10

정석곤 조회 수:97 추천:7

노하기를 더디 하는 종의 리더십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정석곤   지난해 해넘이 달 어느 금요일이었다. 출근 때 교무실은 여느 때처럼 웃음바다로 떠나갈 듯이 왁자지껄하였다. 겨울방학이 갑자기 엿새 앞당겨져 학교문집 발간이 더욱 조급해졌다. 담당교사를 더 도와주고 싶어 내 마음도 더 바빠졌다.   담당교사에게서 편집된 원고의 교정을 부탁받으면서 학부모와 교직원들의 원고 제출 상황을 물어보았더니 아직 교직원 둘이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한 선생님은 직접 만나 원고를 독촉했고, 다른 선생님에겐 조금 멀어 인터폰으로 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체 협의회에서 담당교사가 부탁한 문집 원고인데 20여일이 지나도록 제출하지 않은 그 선생님에게 약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너 해 전에 전출한 교직원들도 전화 한 통화로 원고를 다 받았는데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선생, 학교문집 원고 어떻게 되었지요?”   “아직 못 썼어요.”   “오늘 쓸 수 있으면 오후에 제출하고, 그렇지 않으면 월요일 아침까지는 꼭 부탁해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원고 청탁을 한 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안내면 어떻게 해요?” 톤을 높여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그 동안 학교 행사가 많았고 대학원 리포트 때문에 못 썼다며 지금도 쓰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거친 목소리로 좀 더 톤을 높여서,   “공이 먼저이고, 사를 나중에 해야 하는 거 아니오?” 라고 하면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한참 설명했다. 그래도 그 선생님은 곧 제출하겠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가 싫어서   “알았어요!” 하고 수화기를 덜컥 놓았다.      그 선생님은 항상 깔끔하고 산뜻한 옷매무새로 출퇴근할 때면 맨 먼저 교무실에 들러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밝은 웃음을 주어 교무실 분위기를 환하게 장식하였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뒤 그 선생님은 교무실에 발을 딱 끊은 것 같았다. 그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주 대하였는데 이젠 점심시간에만 힘들게 볼 뿐이었다. 나를 일부러 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작부터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쁜 일정과 출장으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내 머리엔 끊이지 않고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  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뒤에 예물을 들이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늘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학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을 땐 내 마음이 꽉 조여 온 것 같았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만나 대화를 하여 인간관계를 회복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하였다. 학교 일에 치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교장선생님께서 출장가신 틈을 타 제일 조용한 교장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대학원 종강과 이수학점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예전에 내가 목소리를 높였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톤을 높여가며 이야기를 했던 일도 사과를 했다. 아울러 그의 잘못된 것에 대한 걸 짚어 주었다. 또, 교육공동체 생활에서의 바른 태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건 돌발적인 가정사라면서 어머니께서 2주 전에 수술하시고 입원하셔서 두 주간은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찡하며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선생님과 사이가 잠시 소원했던 것이 모두 내 탓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작년 한 해 동안 카풀을 하며 아주 가까워진 사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수박 겉핥기식 인간관계였다. 나 혼자만이 아닌 서로의 인간관계 부족으로 오해와 상처 그리고 앙금이 더 커진 것이었다.    우리에게 서로 흉금을 털어 놓고 소곤거리는 관계[Rapport], 즉 허용적 분위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감선생님, 원고와 사진을 지난 토요일에 담당선생님에게 보내 주었어요.” 라고 말을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말을 듣고서 그 선생님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내가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다 못해서 빚어진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벌써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가며 공동체 생활을 하자고 손을 꼭 잡고 약속하며 웃고 일어섰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건전 가요 ‘있을 때 잘 해’라는 제목처럼 지금 머무르고 있는 직장에서 서로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해온 것이 퍽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니 하늘을 날듯이 기뻤고,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여 기뻤다.   다음날부턴 예전처럼 학교에서 ○선생님과 밝고 화안한 얼굴로 자주 마주칠 수 있어 너무 좋았고,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긴긴 겨울방학이 다 끝나 개학을 하였다. 예년보다 빠른 시․군간 교원 인사발령으로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생각도 안한 ○선생님이 전주시 관내 학교로 발령이 난 것을 며칠 지나서야 제일 늦게 알게 되었다. 갑자기 뭘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였다. 함께 근무한 지가 겨우 두 해 조금 넘었는데 너무 빨리 헤어져 참 서운하였다. 그러나 한 편으론 서로 웃고 헤어질 수 있어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나는 중간관리자로 직장의 일보다는 먼저 동료 간의 인간관계를 앞세워 날마다 시끌벅적한 교무실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오랜 세월 동안 헤어져 있다가도 먼발치에서 눈에 띌 땐 먼저 뛰어가 반기도록 내가 먼저 낮아져서 그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종의 리더십을 길러야겠다. 날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종의 리더십을 닮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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