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엄마의 편지와 D에게 보낸 편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정원정                                                                  “1998년 4월 택지개발이 한창이던 안동시 정상동 산기슭에서 비석도 없는 무덤 하나가 발견됐다. 그 무덤은 특이하게도 사방이 덩굴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무덤에서는 4백여 년 전 조선시대에 죽은 사람의 미라와 가족들이 써 넣은 편지가 나왔다. 무덤은 조선 명종 때 사람 이웅태의 것이었다. 관에서는 미라와 함께 죽은 자의 형 몽태가 부채에 쓴 한시, 만시(輓詩: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 등 한문 아홉 장, 한글과 한문 병용 석 장, 죽은 이의 아내가 한글로 쓴 편지와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가 나왔다. 놀라운 점은 다른 사람이 쓴 글들은 모두 심하게 상했지만 죽은 이의 아내가 쓴 글은 거의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내의 편지는 남편이 죽고 난 다음 쓴 글인데, ‘원이 아버지께’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죽은 이와 글쓴이 사이에 원이라는 아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편지의 내용은 남편 잃은 안타까운 심정과 앞으로 살아갈 막막한 세월에 대한 것이었다.“ 위 글은 소설가 조두진이 2006년 가을에 쓴 ‘능소화’란 소설 첫머리에 소개한 글이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나는 처음에 신문에서 원이엄마의 애절한 편지인 원본사진과 그 글을 현대어로 풀어 쓴 글을 읽게 되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솟았다. 슬프고도 진귀한 소식이었다. 서른세 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인걸이 준수했을  남자의 미라가 400여 년 만에 세상에 들어났다니 희한했지만 그보다는 그의 품에서 나온  그의 아내의 편지에 관심이 갔다.  원이 엄마, 그 소복을 한  젊은 여인이 내 눈에 길게 어렸다. 도타운 부부의 정을 알만한 나이에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여인이 남편의 시신을 집안에 뉘어 놓고 상중임에도, 살아생전에 이야기하듯 쓴 편지, 진실한 감정을 구구절절 토해 낸 편지, 얇은 한지에 쓴 편지가 왜 변치 않고 400여 년의 시공을 넘어왔을까. 신기했다. 종이도 귀한 시대였을 터이니 한 장에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빈칸에 가득 쓴 세필의 붓글씨였다. 병술 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에 쓴 편지였다. 슬픔이 창자를 훑고 쏟아지면서 썼을 사연, 그 시대에도 이렇듯 속내를 표현할 수 있었다니 자닝스럽고 선거웠다. 나는 그때까지 옛 여인은 부부가 서로 사랑해도 감정을 들어내지 않고 별방을 하며 너볏하게 처신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양반 집의 면모는 그랬었다. 헌데 원이엄마의 편지를 보니,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다가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뼛속에서 토해내는 절규에 가까운 하소연을 스스럼없이 써내러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원이 엄마는 정숙한 여인으로서 평소 애틋이 주고받았던 부부끼리의 정담을 이승을 떠난 남편 곁에서 찬찬하게 편지로 쓸 수 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여느 때도 아니고 상부를 당한 마당에 어느 구석에서 이 글을 썼을까. 헤아려보면 조선 시대의 여자가 감히 망자의 관 속에 편지를 써 넣다니 이건 새로운 자료였다. 그는  아내인 자기의 서러운 감정을 진실하게 표현할 줄 안 걸로 봐서 아마 기품 있는 집안의 딸이었을 것이고, 아내였을 성싶다. 왜냐면 글을 배우지 않고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만한 편지를 쓸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솔직한 사랑과 사람을 존중한 인간적인 부부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대를 뛰어 넘어 감동스럽다. 나는 얼마 전에 ‘D에게 보낸 편지’란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앞표지에는 젊었을 때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예쁘고 잘 생긴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막 춤을 추는 사진과 마지막   뒷장에는 노년의 부부가 어깨에 손을 얹고 지극히 따스한 표정으로 삽삽스럽게 서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책을 쓴 앙드레 고르는(1923년 ~ 2007년)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사상가이자 언론인이었다. 1947년 아내 도린과 만나 49년에 결혼했다. 긴 세월을 행복하게 살다 노년에 아내가 뜻하지 않은 불치병에 걸리자 공적인 활동을 오롯이 접고 20여 년간 아내의 시중을 든 애처가였다. 2007년 9월 22일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하기 전 해에 편지체로 쓴 책이다. 책머리에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부 사랑도 있을까?    책 맨 뒤에는 “그러나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이것이 진짜 부부일 것이다. 편지를 읽다 보면 감동보다는 가슴이 저리고 아리지 않는가? 이토록 찔깃한 사랑을 늘그막까지 지닐 수 있었다는 게 고귀해 보인다.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적인 부부애를 보며 찡한 여러 생각이 겹친다. 허다한 부부들이 갈등을 안고 본데없이 외쪽 생각만하고 상대를 품어 주지 못하며 살든. 지극히 아끼며 서로 존중하며 사는 부부든 모두가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니겠는가. 살다보면 서로 벋설 때도 있겠지만 이 지구상의 단 한 사람을 선택해서 만난 부부가 아닌가?  동심일체로 살다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정해 놓은 운명인데, 정말 살아 있을 때 귀히 여기고 아끼며 살 일이다. 위의 두 이야기가 가슴을 치는 것은 왜일까. 나 자신을 곰곰이 되새김질하게 되는 건 왜 일까. 고결함이 점점 외면당하고 천박함이 앞서가는 이 시대에 내가 서있는 자리는 어디쯤일까?                                        (2008.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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