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어느 가을날의 편지

2008.10.09 05:40

구미영 조회 수:118 추천:15

어느 가을날의 일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구미영 지난 주말, 시댁에 다녀왔다. 이유는 고구마를 캐기 위해서였다. 남편의 귀소본능(?)에 발동이 걸리는 수확의 계절이기 때문에 난 아무말 없이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조금씩 나도 모르게  겹치는 옆구리 살들을 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기로 했다. 시댁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노오란 들녘의 고개숙인 벼들이 "안녕 하세요!"하며 인사를 하는 듯했다. 먹지 않아도 그냥 배가 불렀다. 고구마를 캐본 경험이 없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댁에 갔을 터이지만 단단히 각오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밭에 도착하니 시부모님은 벌써 두 고랑이나 캐셨다. 부지런하기도 하신 분들이다. 캐놓은 고구마를 주워 담으면서 산 짐승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만든 울타리에 자꾸 눈이 갔다. 작년까지는 우리 식구들 먹을 만큼의 고구마를 심었기에 산 짐승의 습격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올해엔 고구마를 장에 내다 팔려고 울타리까지 만들게 됐다고 하셨다. 먹을 것이 없어 자꾸 짐승들이 산 밑으로 내려 온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했었는데 그곳도 피해 갈 수 없는 곳이었나 보다. 오늘은 문득 수필반 한 문우님이 쓰신 글이 생각났다.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삶.'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는 먹이 사슬에 인간의 힘이 끼어 들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하지만 농부의 며느리로 10여년을 살아온 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 신세가 되곤 한다. 고구마도 자연이 준 선물일텐데 인간만이 차지 한다면 자연이 화를 낼 것 같기도 했다. 한 줄기에서 나온 고구마들을 보며 어머님께서는 "한 부모 밑에 참 여러가지도 나왔네!" 하시며 방긋 웃으셨다. 난 모양도 크기도 제멋대로인 고구마 중 예쁜 것은 상자 안에 못생긴 것은 포대 안에 담았다. 그리고 기형적인 모양의 고구마들은 시부모님 몰래 울타리 밖으로 던졌다. 산 짐승들에게 내가 이만큼 줬으니까 더 이상은 우리 밭에 들어 오면 안된다면서. 치솟는 물가와 어려운 가정 살림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외치다 보니 인간들도 어쩔 수 없이 산짐승의 먹이를 탐하는 것 같다. 농부들 또한 봄, 여름 동안 흘렸던 땀방울들을 가을에야 비로소 닦을 수 있기 때문에 산짐승의 배고픔까지 생각할 수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을에 거둬들인 양식들이 농부들에겐 생활이고 숨통이란 걸 잘 알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두배가 될 수밖에 없다. 아버님께서는 고구마를 캐시면서 밭 한쪽 끝에 있는 밤나무를 가리키며 밤까지 주워 가라 하셨다. 딸아이는 "엄마, 내가 주웠어." 하며 알밤 하나를 가져 왔다. "다람쥐 먹게 그냥 내버려둬." 하며 나도 모르게 튕겼다. 아버님께서는 손주들이 좋아하는 알밤을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주워가라 하셨을 테지만 난 아버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고구마 담는 일이 힘들어 알밤을 주울 기운조차 없었는지 아니면 진정 다람쥐를 위해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알밤은 다람쥐에게 양보하고 우리 식구는 시댁표 고구마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노동을 했으니 몸무게에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체중계에 두발을 올렸다. 끄악! 살이 빠진 게 아니라 1킬로그램이 더 불었다. 하지만 시나브로 긍정의 힘이 나를 위로했다. 시부모님을 돕고 산 짐승에게 먹이까지 주었으니 그 뿌듯함에 살이 붙은 게지. 힘들었던 하루였지만 마음은 아직까지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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