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슬픈 고백

2008.10.13 03:51

송병운 조회 수:113 추천:15

슬픈 고백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송 병 운 오랜만에 은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정년퇴임하신지가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지금 무슨 일을 하시다가 전화를 받으셨느냐고 여쭈었더니 상당히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찾는 중이라고 하셨다. 분명히 가까운 곳에 두었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선생님보다 내가 더 답답해졌고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 지금 저와 통화하고 계신 전화기는 무엇인데요?” 잠깐 뜸을 들이시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며, “내가 왜 이러지? 나도 정말 늙었나봐.” 혹시 건망증이라는 것이 우리 선생님한테도 찾아온 게 아닐까.  유난히 제자사랑이 극진하시고 인품이 훌륭하시어 가장 존경받는 은사님이시다. 책 읽기를 좋아하시어 서점에 자주 들르셨는데 한 번은 책을 고르시다가 내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며 책을 사서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아마도 그때의 감동은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선생님께서 손에 쥔 휴대폰을 찾으셨다니 걱정이 되면서도 묘한 감흥이 일었다. 오늘 선생님의 실수가 꼭 싫지만은 않고 웃음이 나오니 불경죄임이 틀림없을 터이다. 매사에 빈틈이 없고 흐트러짐이 없었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실수담이 있은 뒤에 오히려 더 정겨워지고 가까워진 느낌이다. 남의 실수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 인간에게는 묘한 잔인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완벽한 사람보다는 빈틈이 있는 사람이 훨씬 편하고 정감이 가니 말이다. 그것은 내 자신이 덤벙거리고 실수를 자주 하는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는  변명일 수도 있다. 지난번 출장 중에 일어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면도를 정성스럽게 한 뒤 스킨을 발랐다. 그런데 스킨이 예전과는 다르게 끈끈하고 마치 로션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요즘 스킨은 이런 것도 있나보다 생각할 뿐 별다른 의심 없이 얼굴에 발랐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출장준비를 아내가 해주었으니 가방속의 소지품들이 평소와 거의 비슷하였다. 다만 스킨이 평소 사용했던 것과는 다를 뿐이었다. 너무 끈적거려 화장지로 살짝 닦아냈다. 그런데 자꾸 얼굴이 당겨져서 쉬는 시간마다 스킨을 발라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이 바뀌니 이런 증상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저녁에 집에 와서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술을 마신 얼굴 같았고 후끈후끈 열까지 있었는데 세수를 하니 미끈미끈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천변에 가서 찬바람을 쐬기도 하고 얼음을 싼 수건으로 열을 식혀가는 일을 반복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걱정스러워하던 아내가 짐을 정리하다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말 쌤통이다’ 하며 통쾌하게 웃었다. 아! 아침부터 얼굴에 발랐던 것은 스킨이 아니라 샴프 였던 것이다. 조그만 스킨 병에 샴프를  담아주고 글씨를 써 놓았는데 내가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를 감는 독한 것을 얼굴에 발랐으니 어찌 되겠는가. 화끈거리고 거친 느낌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반복해서 더 발랐으니  얼굴 피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출근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밤사이에 많이 좋아져서 출근은 했지만 그 흔적은 바로 없어지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얼굴 모습을 변명하고자 직장 인터넷 게시판에 이 실수담을 실었더니 폭소를 터뜨리며 좋아하는 사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걱정하는 사람 등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모두가 재미있어 하였다. 실수담 마지막 부분에 “이런 엉뚱한 면을 가진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해하여 주시고 많이 도와주세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가 조심스러워하는 관계였는데 나의 애교어린 웃음거리는 직원들과 편안하게 지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 꼭 손해는 아닌 듯싶었다.                (08.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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