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옥상 농장

2008.10.22 04:51

김영옥 조회 수:105 추천:13

옥상 농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영옥                                            농장이라고 하면 몇 천 평이 넘는 곳에 많은 작물을 가꾸는 곳인 줄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옥상 농장은 우리 집 옥상에 여러 가지를 심은 그릇들을 합치면 20평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농장이다. 땅을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애석하게도 심고 가꿀 땅이 한 평도 없다. 17년 전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던 해에 이 집을 팔고 아파트로 가려다 난 아파트가 답답하여 싫다면서 헐고 양옥집을 지었다. 2층으로 지으려다 마당이 없기에 단층옥상을 마당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앞마당엔 꽃나무들을, 옥상에는 채소들을 심고 싶어 이웃집들 지을 때 흙을 날라다 갖가지 그릇들에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80여개로 늘었다. 목마른 자가 물 한 모금 마시는 격이리라. 나의 농장은 규모는 작지만 실용적인 것들로서 우리 두 식구의 찬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올 여름에도 상추, 배추, 고추, 피망, 파프리카, 가지, 부추, 대파, 쪽파, 근대, 아욱, 쑥갓, 치커리, 돌나물, 호박, 토마토, 들깨, 참깨, 고구마, 생강, 어성초, 오갈피나무 등 약초까지 1년 내내 흙이 쉴 새도 없이 심어대니 흙에게 미안할 정도다. 농작물에 따라 크고 작은 화분에서부터 고무함지박 통, 스츠로풀 박스, 옹기시루 등 다양하다. 한여름 가물 때면 3치정도의 흙에 심어진 식물들이 나의 손길만 기다리니 여행도 못한다. 그들을 향한 나의 정성이 있었기에 그들도 그만한 보답을 한 것이 아닐까. 마침 담밖에 지하수가 있어서 집을 지을 때 모터를 이용해 집안에서 쓰기 좋은 곳에 수도시설을 해 놓았기에 옥상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꽃이나 채소에 수돗물을 준 적이 없다.   남편은 요즘 나더러 부쩍 그만두라고 재촉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허리까지 아픈 사람이 욕심을 부린다며 물도 한꺼번에 몽땅 주라고 나무란다. 가꿔보지 않으니 잘 모르는 말이다. 사람도 하루 세 끼 먹을 것을 한꺼번에 먹으면 될까? 말은 못해도 정성을 다하는지 마지못해 하는지 얼마만큼 사랑을 주는지 그들도 다 안다. 식물도 음악을 틀어주고 밤엔 가로등불빛도 가려준다지 않던가.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다. 기분 좋고 사랑을 듬뿍 받고 스트레스 없이 모든 게 만족했을 때 잘 되는 것은 사람이나 똑 같다. 차라리 심지 말아야지 심어놓고 잘 가꾸지 않으면 자식을 낳아놓고 잘 돌보지 않는 부모나 무엇이 다르랴. 여름날 외출에서 돌아와 시든 식물들을 보면 옷도 벗지 않고 물부터 준다. 꼭 사람을 섬기는 마음으로 식물도 돌봐야 잘 자란다.   농부는 거름 준비를 잘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영양식을 고루 주어야 건강한 것처럼 식물에게도 절대 요소가 필요하다. 집에서 나오는 각종 찌꺼기로도 모자라면 건강원에서 약을 달인 찌꺼기를 얻어다 보충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생선도 다듬지 않고 가져오고, 콩나물 찌꺼기, 쓰레기통의 수박껍질도, 방앗간의 콩 껍질이나 깻묵 등, 거름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져 온다. 김장때 배추 절인 소금물에 김장쓰레기를 모두 담가 두었다가 봄부터 물을 타서 사용한다. 젓갈 달인 찌꺼기, 멸치나 생선 먹고 남은 가시, 된장 등 짠 것이나 구더기가 생길 것들은 큰 통에다 담고 물을 부어 덮어 두면 햇빛을 받고 발효되어 좋은 거름이 된다. 맹물에 희석하여 거름 물 한 번 맹물 3번씩 준다. 여름철에는 짠 것을 빼고는 무엇이든 토마토나 고추, 가지, 호박 같은 것에 마구 주어도 좋은 거름이 된다. 식물을 가꾸는 일도 우리 아이들 기르는 마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농사를 지으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았다. 노력하면 그만큼 헛되지 않고 얻는 것이 농사일이다. 초여름에 고구마 싹을 한 박스에 6개씩 6박스에 꽂아놓고 여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도록 준 것 뿐인데 내 주먹보다 크고 작은 보석들이 2박스가 넘게 나왔으니 먹기도 아깝다. 고구마와 토마토도 진짜 유기농 식품이니 비료로 가꾼 것보다 맛이 더 좋다. 작은 깨알 하나가 몇 백배의 소출을 낼 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서 ‘심고 가꾸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느님이시라'고 했다. 사람이 만든 공장에서 상추 한 닢, 고추 한 개, 참깨 한 알, 쌀 한 톨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여러가지 씨앗을 심고, 싹이 나며, 자라서 열매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면서 같은 것만 평생 먹는다면 질릴 것이지만 철따라 맛과 영양이 다르게 주심은 창조주께서 사람들을 한 없이 사랑하신 까닭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성급하게 당장 이루어지길 바라는 우리들에게 오래 참고 기다리는 일도 배우게 된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몸을 데우고 어린 싹일지라도 모진 비바람을 맞고도 꿋꿋이 견뎌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흙이란 물질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온갖 것들을 흙으로 덮으면 썩혀 식물에게 양식으로 돌려주는지 두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생명의 원천인 흙을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거늘 왜 사람들은 자꾸만 흙과 멀어지려고 하는지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자연은 우리의 스승이다. 대도시 아이들이 쌀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고추가 어떻게 열리는지 그림으로만 보며 자란다. 몇 가지라도 함께 직접 기르면서 체험한다면 식품이 어떻게 우리 입까지 들어오게 되는지도 알게 되고, 농민들의 수고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음식물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누구든지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이 있다면 농장을 경영해봄직 하다. 첫째 집안의 음식찌꺼기로만 가꾸니 돈이 들지 않는다. 그릇은 스츠로플 박스가 제일 좋고 10년 이상 사용 할 수도 있다. 작물에 따라 뿌리채소는 흙을 많이 담고, 잎채소는 그릇에 7부 정도 채우는 것이 좋다. 흙속에는 지렁이, 굼벵이, 돼지벌레가 득실거려야 흙을 숨 쉬게 만들고 작물이 잘 자란다. 우리 셋째 딸은 서울 아파트에 살면서도 네모난 플라스틱 그릇에 벼 몇 포기를 심은 지가 올해로서 4년째다. 벼를 베고 나면 싹이 올라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단다. 올해도 전화로 물었더니 지금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한다. 그 속에는 4년 전에 넣어둔 미꾸라지가 작은 장어만 하다니 놀랄 일이다. 햇빛, 물, 공기 등 여건만 갖춰주면 어디서든 가능한 것이 농사인 것 같다. 난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옥상 농장에 늘 푸른 옷을 입히고 함께 어울려 즐길 것이다.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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