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전주에 사는 기쁨(4)

2008.10.25 19:37

김길남 조회 수:95 추천:10

전주에 사는 기쁨(4)                        -여기가 조선시대 마을인가-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간반 김길남    나긋나긋한 몸매에 사뿐사뿐 돌다가 살짝 들어올린 듯한 우리 춤사위를 닮았는가. 한옥 처마의 흐르는 곡선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굽어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 지붕 아래에서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할머니가 손자에게 삶은 밤을 까먹일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자장가를 부르며 새근새근 잠드는 아기를 다독거려 줄 것 같기도 하다. 고향집 같은 한옥마을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안강의 대궐 같은 집은 양반이 하인을 부리며 호령하는 집이다. 조선시대 권세 있는 양반이 권위를 부리는 구조로 지어져 인간미가 덜하고 따뜻한 맛이 나지 않는다. 하인이나 행랑아범이 머리를 조아리며 상전을 모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문화유산답사를 다니며 돌아 본 양반 댁은 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전주의 한옥마을은 다르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남아 있는 전주 한옥은 대갓 집 권위를 간직한 집이 아니다. 양반이 하인을 부리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가족끼리 모여 사는 정다운 집이다. 골목을 걷다보면 금방이라도 다정한 친구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순도순 식구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어린 아이의 글 읽는 소리가 날 것 같다. 어른들의 우리민요 한 가락이 흘러나올 것 같고, 서예를 즐기는 이의 묵향이 풍길 것 같기도 하다.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전주는 집을 지을 때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도록 지었다. 조화를 이루어 다정하다. 집의 꾸밈새를 보자. 문이 열려 있는 어느 집을 살짝 보니 한국화 몇 점이 걸려있고, 도자기가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의 멋을 살려 꾸미고 산다. 그래서 전주를 예와 멋의 고장이라 하는가 보다. 은행나무 골목을 걸어보자. 앙증맞은 도랑물이 졸졸 흐른다. 아쉽게도 자연수가 아니고 인공으로 뿜어 올려 흐르게 하지만 옛날 정취가 그대로 풍긴다. 송사리도 살고 우렁이도 기어 다니면 더 좋겠다. 수초도 자라고 물방개도 헤엄친다면 더더욱 고맙겠지. 골목으로 들어가면 갖가지 옛날 모습을 재현한 집들이 많다. 한옥체험을 하는 풍남헌과 전주기와집 민박집이 있고 전통차를 마시는 다로헌과 다화원, 설예원 등이 즐비하다. 공예명인관에서는 악기장이 우리 가락을 연주하는 풍물악기를 만든다. 술박물관에는 술 담그는 순서와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계영배도 있어 흥미를 더한다.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 못한 계영배를 보아 기뻤다. 많이 따르면 술이 없어지는 잔인데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잔이라 한다. 갖가지 전통술을 표본으로 만들어 보여 주고 있다. 황손 이석 씨가 거처하는 승광재에는 고종황제와 순종황제 행차 사진과 장례행렬 모습, 영친왕과 의친왕 사진이 걸려 있다. 영조의 가계도와 고종황제의 가계도도 그려 놓았다. 고종황제의 손자인 이석 씨가 살면서 시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배려라 여겼다. 안방을 구경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황손이 궁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 미국으로 이민까지 갔다가 돌아와 갈 곳이 없자,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서 황실문화재단을 창립하고 황손을 모셨다. 한옥마을에 가면 이곳이 21세기의 전주인가 조선시대의 전주인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온 느낌이다.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은 전주뿐이다. 나는 이런 전주를 사랑한다. 전주에 사는 기쁨을 맘껏 누리고 싶다.                       (200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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