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크산티페를 위하여

2008.11.10 05:43

최윤 조회 수:103 추천:8

크산티페를 위하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늘 그러하듯 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우는 것으로 싸움은 끝났다. 울면서 내가 ‘크산티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절망감에 빠졌다가 잠이 들었다. 이것은 정말 내가 잠을 자면서 꾸었던 꿈이다. 내가 그리스 식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순간 난 ‘내가 클레오파트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그리스 식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몇 명 보이고, 어렸을 적 재미있게 보던 위인 만화에 나왔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벌거벗은 채로 ‘유레카!’ 하면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난 왜 이런 차림으로 이러고 있나?’ 하고 있는데 내 귓가에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크산티페! 크산티페!’ 그렇다. 난 크산티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잠이 깨버렸다. 재미있는 꿈이겠는데 아쉬웠다. 요즘 역사적인 인물이 재해석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악인(惡人)으로만 생각하던 사람이 그 시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악인으로 점 찍혔지만 훗날 알고 보니 그런데는 이유가 있었기에 새로운 인물로 재해석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사도세자는 방탕한 삶을 살다가 영조에게 미움을 사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영리하고 효심도 깊었다 한다. 다만 마음이 너무 유약해서 생긴 우울증이 정신병으로 발전하여 그렇게 불행한 삶을 마쳤다 한다.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는 사극 속의 화가 혜원 신윤복도 여자라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화가니까 당연히 남자려니 했던 것이 달리 생각해 보니 여류화가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악처의 대명사인 크산티페도 재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내가 악처에 점점 가까워 가고 있기 때문에 크산티페의 편을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크산티페도 처음에는 아름답고 수줍음 많은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사랑을 느껴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남편이 가정에는 소홀하고, 박식한 달변가이긴 해도 가정에는 도움이 되지도 않는 뜬구름 잡는 말들만 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좋아할 아내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도 처음엔 부드럽게 타일렀을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고,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할 수 없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자신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졌을 것이다. 생활고에 치어 그녀의 부드럽던 말투도 점점 잔소리로 변해갔을 것이다. 어렸을 적 봤던 만화영화에서 크산티페가 남편에게 양동이로 물을 끼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땐 참 나쁜 여자구나 했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그 아름답던 그녀의 얼굴은 생활고에 찌들어 점점 독한 인상이 되어가고 하루일과를 마친 그녀는 탁자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나도 우아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며 반성했을지도 모른다. 남의 속도 모르고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바가지만 긁어대는 크산티페를 악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힘겨웠을 것이고 또 남편이 독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봐야 했던 불행한 여자였다. 내 남편은 참 착하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훌륭하다 하여 나도 그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어느 부분에서는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줘야 한다. 그것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지름길이니까. 그래서 천사 같은 남편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악처가 되어야 했다. 나도 아프로디테 같은 천사의 모습만 보이고 싶지만 그렇다면 과연 현실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점점 크산티페가 되어 가는 나를 느낀다. 사람들은 크산티페가 바가지만 긁는 악처라서 소크라테스가 밖으로만 돌다 후대까지 명성을 남긴 철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바가지를 잘 긁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뒷바라지를 잘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크산티페는 아마도 뒤끝이 없는 직설적인 말투의 여자였을 것이다. “여보, 소크라테스! 오늘은 철학공부 열심히 했나요? 난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으니까 난 견딜 만해요. 하지만 괜히 쓸데  없이 말을 많이 해서 수구파(守舊派)들한테 미움 사지 않게 조심하세요!” 우연히 소크라테스의 집 앞을 지나가던 그의 제자가 거친 그녀의 말투만 듣고는 그녀를 악처라 기록한 것이 오늘날까지 크산티페가 악처의 대명사로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크산티페, 그녀는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왜 내가 악처의 대명사로 사전에 나와야 하느냐며. 하지만 훌륭하게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했을 그녀의 강단과 용기를 이해한다며 그녀를 옹호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이 글을 크산티페에게 바친다. * 수구파: 진보적인 것은 외면하고 옛 풍습과 제도만을 지키려 하는 보수적인 무리. 소크라테스는 수구파들에게서 독약을 받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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