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허수아비들도 떠나버린 농촌

2008.11.27 13:12

최기춘 조회 수:103 추천:8

허수아비들도 떠나버린 농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허수아비들은 소탈하고 순박한 농민들을 닮아서 그런지 농부들의 헌옷과 낡은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밤낮없이 뙤약볕 아래 서있었다. 비바람이 불거나 천둥번개가 쳐도 허수아비들은 한 눈 팔지 않고 논밭을 지키면서 한 발짝도 떼지 않았었다. 허수아비들도 때로는 예기치 않은 수난을 당했다. 나의 초등하교 시절에는 엿장수들이 빈 유리병이나 여러 가지 쇠붙이, 헌 고무신은 물론 헤진 삼베옷까지도 엿과 바꿔 주었다. 그래서 가끔 시망스런 애들이 허수아비의 옷을 홀랑 벗겨서 엿을 바꿔 먹어버려 모자만 쓴 채 발가벗은 허수아비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수난을 당하면서도 허수아비들은 주인의 허락 없이는 자리를 뜨지 않고 농부들과 함께 농촌을 지켜왔었다. 그런데 허수아비들이 언젠가 논밭을 떠나 도로가의 코스모스꽃길이나 도시근교의 공원으로 자리를 옮기는가 싶더니 아예 논밭을 지키는 허수아비보다 도회지로 떠나간 허수아비들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봐야 살길이 막막하여 농촌을 떠나는데 허수아비인들 무슨 재미로 논밭을 지키겠는가? 아예 농촌을 떠나려고 작심한 모습들이다. 차림새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논밭을 지킬 때는 검소하게 농민들이 입다 헤진 삼베옷에다 헌 밀짚모자였는데 지금은 입고 있는 옷이나 쓰고 있는 모자도 세계적인 유명메이커들의 옷차림으로 허수아비 패션쇼를 연출하고 있다. 옛날 시골길을 걷다가 달밤에 혼자 외롭게 넓은 논밭을 묵묵히 지키는 허수아비를 보면 반가웠는데 논밭을 떠나 코스모스 꽃길이나 도시근교의 공원으로 간 허수아비들의 옷매무새는 화려하기 짝이 없다. 떼를 지어 서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것 같지만,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이나 도회지의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허수아비들은 어쩐지 고향을 떠난 실향민처럼 쓸쓸해 보여 안타깝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까지 했었다. 그만큼 농사는 우리 조상대대로 이어 내려온 생업의 근본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쌀이라고 대답하여 크게 칭찬을 받은 바 있지만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허수아비도 쌀의 소중함에는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요즘 농민들이 벼 가마를 자치단체와 농협청사 앞마당에 야적하면서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쌀값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다가 결혼한 뒤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34년 동안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했다. 그래서 농민들의 처지를 다소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전주 매곡교 다리부근에 새벽이면 장이 서는데 대부분 우리들의 밥상에 오르는 농수산물장이다. 나는 가끔 새벽 산책길에 그 장에서 찬거리들을 사기도 한다. 그곳에서 물건을 살 때 값이 너무 싸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진다. 요즘은 김장철을 앞두고 무와 배추 값이 생산비에도 못 미친다고 울상들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과 쌀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을 개방하여 요즘 쌀값은 물론 모든 농산물 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은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농촌의 장래가 걱정이다. 요즈음 젊은이들과 함께 허수아비마저 도회지로 떠나버리고 늙고 힘없는 노인들만 농촌을 지키고 있다. 정부에서는 농촌에 대한 좋은 시책을 마련하여 도회지로 떠난 젊은 농부들과 허수아비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가을이면 농자천하지대본 깃발을 높이 들고 농악을 울리며 함께 어울려 축제를 여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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