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우리 집 10대 뉴스

2009.01.02 03:42

석인수 조회 수:116 추천:12

제 2의 인생 전환점이 된 2008년

-2008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석인수












2008년 무자년은 내 인생의 크나큰 전환점이었다. 40년 공직생활을 마감하였고,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지 만 60년이 되는 회갑의 해였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준비기간이기도 했다. 이제 그 동안 못 다한 일들을 잘 추슬러 봐야겠다. 하고 싶었던 것들도 하고 싶다. 제2의 인생의 항로를 찾아서 보람되고 성과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하잘 것 없을지 몰라도 2008년 한 해 동안의 우리 집 10대 뉴스를 정리해 본다.




1. 새로운 보직을 받다




공직 말년이 되면서 정말 혹독하고 힘든 생활을 했다. 2006년 7월부터 시작한 김완주 도지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건설교통방재국장으로 있는 나를 동년 8월 7일자로 보직 해임하더니만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2007년 1월 19일자로 새만금 환경국장으로 보임했다. 새만금 관련 업무, 특히 ‘새만금 특별법’ 제정은 온 도민의 열망이고 최고의 관심사였다. 누가 뭐래도 내가 그 일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선봉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수많은 난관들이 밀려왔지만 정․육간에 사력을 다한 결과 2007년 12월 27일 마침내 ‘새만금 개발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는 쾌거를 온 도민과 함께 이뤄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 뿌듯한 성과이자 보람이었다. 그런데 이 기쁨도 잠시, 도민의 축하도 받기 전에 또다시 2008년 1월 2일자로 경제자유구역추진 기획단장이라는 새로운 자리로 발령을 받았다. 역시 발령이유는 몰랐다. 전혀 생소한 보직이었다. 도청 내에서는 처음 생긴 자리이고, 그래서 이 업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참으로 암담했다. 업무가 산 너머 산이었다. 개척하고 창조해야 하는 막중한 일이었다. 재임하는 동안 내내 하루도 속 편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




2. 둘째딸 소진의 결혼과 승진




둘째딸 소진이는 고등학교까지만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대학은 조선대학교 간호학과를 다녔기 때문에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서울 아산병원에 취직하였으니 줄곧 고향을 떠나 사는 소진이가 올해 서른두 살이나 되었다. 두어 군데서 중매가 들어와 선을 보고도 영 마음을 정하지 못하더니만 올해 초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충 짐작했지만 감춰둔 신랑감이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동기동창생인데 제 맘에는 들었던가 보다. 양가의 상견례 자리에서 결혼을 확정하여 2008년 5월 24일 마침내 결혼을 하였다.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살 집으로 서울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해서 더욱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일곱 달이 지난 12월에는 정식으로 ‘계장’자리로 승진했다는 낭보를 들려주었다. 기쁨을 두 배로 안겨준 딸이다. 사위 홍진태도 자기계발을 위해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니 그들 부부가 미덥다.




3. 40년간 봉직한 공직 명예 퇴임




1968년 9월 21일자로 지금의 9급 공무원으로 부안군 부안읍사무소에서 공직의 첫발을 들여 놓았으니 2008년 만 40년이 되었다. 나는 평소 사람은 물러날 때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작용했지만 내가 바라보는 지사의 도정수행 스타일은 정말 옳지 못했다. 다분히 주관적․일방적․즉흥적․정치적이었다. 나는 마침내 지금이 물러날 때라는 판단을 했고 2008년 6월 30일자로 명예퇴임을 했다. 그동안 숱한 난관이 있었지만 또 보람도 많았다. 운 좋게 이사관이라는 최고의 자리까지 승진했다. 주경야독으로 공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주변의 많은 분들께 감사한다. 특히 큰 무리 없이 공직을 마무리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4. 처녀 수필집 발간 준비




2008년은 2005년 등단 이후 가장 글을 많이 쓴 한 해였다. 공직퇴임과 환갑을 즈음해서 책을 내겠다는 평소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자작으로 써온 글들을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고 생각하니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몇 번씩 보고 다듬었지만 글답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전문가의 첨삭지도와 교정․수정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준비한 해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으니 2009년 새봄쯤에는 나의 처녀 수필집이 태어날 것이다.




5. 새롭게 시작한 골프 인생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무엇 하나 똑바로 하는 운동이 없었다. 아내가 1년 여 전에 시작한 골프를 퇴임하면서부터 나도 몰두하다시피 열심히 했다. 건강을 목표로 한다지만 욕심은 그게 아니었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선배들 말로 골프처럼 어려운 운동이 없다던데 정말 그런가 보다. 할수록 어렵고 잘 됐다가도 안 되는 운동인 것 같다. 아무튼 재미가 있다. 내가 종목을 잘 선택한 것 같다. 골프는 내 제2의 인생 동반자로 삼고 싶다.




6. 제2의 인생 출범




2008년은 인생 2모작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정․육간에 새롭게 추스르는 한 해였다. 우선 정신적으로 새로운 무장을 했다. 지금까지의 삶은 인생 전반기이기에 하루 빨리 뒤안길로 묻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꿈같은 세월 속에서 깨어나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면 현재가 발목 잡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육체적으로도 강인한 체력과 건강을 다져야겠기에 방만했던 내 생활을 다잡고 있다. 집안도, 서재도 새롭게 정리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시와 수필도 열심히 쓰고 또 하고 싶었던 서예도 시작하려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7. 빚진 자로서의 날갯짓




그 동안 살면서 마음속에 빚진 자로 살았다. 이제 고맙고 감사했던 여러 분들을 찾아 인사하고 답례하는 날갯짓을 시작했다. 여태껏 남에게서 받기만 했던 은혜를 이제는 나도 주면서 살려고 노력했던 한 해였다. 앞으로 영역을 더 넓히고 더 많은 노력과 날갯짓을 하려고 다짐한다. 주는 기쁨을 체험하고 싶다.




8. 형제애를 돈독히 했던 한 해




20여 년 전부터 시작한 형제의 모임이 있다. 이름하여 ‘한마음회’다. 자립하고 자족하지 못하는 제각기의 삶 속에서도 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내가 만든 모임이다. 그 동안 깨질 위기도 많았지만 강한 의지와 적극적인 자세로 밀어붙여 지금은 모임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제는 형제들도 나이가 들고 형편도 옛날 같지 않아 날이 갈수록 이 모임을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이 정기 모임인데, 특히 내가 퇴임하면서는 별일도 아닌데 수시로 전주와 군산으로 몰려다니며 모인다. 금방 모여도 형제가 거의 다 모인다. 정말 가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12월 초에는 온 가족이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에 있는 굴단지를 방문하여 천연 굴을 맛보고, 밤 바닷가에서 장작불을 피워 놓고 모두가 삥 둘러서서 기도와 찬송을 하며, 자신의 처음 신앙생활 시절을 회고하던 ‘한마음 파이어(fire)'는 퍽 인상 깊은 추억이 되었다.




9. 부부의 소중함을 확인한 한 해




세 딸들이 모두 결혼했다. 어떤 땐 덩그러니 둘이만 살아가는 아내와 나를 발견하고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딸들에게서 전화라도 오지 않으면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자기네들도 삶이 바쁘겠지만 그래도 서운한 생각은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소중하고 아내의 무게가 더해진다. 그런 생각은 아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루 생활 속에서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눈과 가슴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로가 서로를 잘 챙겨야 한다고 다짐했다.




10. 방황한 신앙생활




3~4년 전부터 다니던 교회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들의 목회자로서의 모습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점이 화근이 되어 몇 분의 목사님이 들고 나갔다. 작년부터 부임한 ○ 목사님의 목회 방식과 행태는 교인을 힘들게 하고 출석 교인이 50명 내외로 줄어들게 했다. 올해 들어 점점 내키지 않더니만 하반기 언제부터인가 다른 교회를 넘나들고 마침내 주일에 TV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연말쯤 되어서 가까스로 가까운 교회로 나가고 있다. 2008년은 신앙적으로 방황한 한 해였다.



공직에서 물러나고 보니 마치 육상 선수가 종아리에 매달던 모래주머니를 벗어버린 것만큼이나 홀가분하다. 6개월 동안이나 제2의 인생을 연습했으니 새해부터는 더 짜임새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축년 새봄, 나의 처녀 수필집이 출간되면 나는 문학 분야에서도 날개를 달게 되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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