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작은 사랑은 바람을 타고

2009.01.17 14:09

송병운 조회 수:134 추천:5

작은 사랑은 바람을 타고                  전북대학교 평생 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송병운 바다가 보고 싶다는 아내와 둘이서 부안에 갔다.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의 잔해들이 아직도 벌판을 덮고 있어 겨울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원한 바다는 가슴까지 후련하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치에 어린애처럼 마음이 들뜨고 잡다한 생각들이 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변산과 격포에는 우리처럼 휴일을 맞아 나들이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경제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적어도 격포에서는 실감나지 않았다. 횟집에서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점심을 먹고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가 지겹겠지만 우리처럼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이다. 한참을 가니 간이 버스정류소가 보였다. 그런데 나이 많은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는 듯 햇빛이 비치는 곳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옆에는 꽤 큰 보따리가 놓여 있었다. 왠지 그냥 지나치기가 미안하고 또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아주머니를 데려다 주기로 하고 차를 세웠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저희들이 모셔다 드릴게요.” 갑작스러운 나의 외침에 놀랐는지 한손으로 보따리를 움켜잡으며 손을 살래살래 저으며 “아녀요. 그냥 가세요.” 라고 하였다. 꽤 겁을 먹은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니 순간 멋쩍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차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우리 부부는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우리가 사기꾼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 보따리에는 뭔가 소중한 것이 들어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노리는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배려했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섭섭하였지만 세상 탓이지 결코 그 아주머니의 잘못이 아니라며 자위하였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남의 것을 빼앗아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였으리라. 나는 운전을 하고 가다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차를 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친구는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리기도 하였다. 만일 그 상황에서 사고라도 나면 내가 권해서 태웠기 때문에 책임이 매우 커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법이란다. 그러나 다행인지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러한 습관을 갖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에 우연히 만난 택시기사 때문이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처가인 경기도 수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겨울에는 일부러 승용차 대신 기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눈길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기차를 이용한 겨울여행의 기분을 누려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어둠이 내린 전주역에 도착하니 전날 내린 눈 때문에 빙판길이었다. 요즈음엔 택시를 타는 곳이 정해져 있어 순서대로 타면 되지만 당시에는 경쟁을 하여 먼저 타야했었다. 우리는 일행도 네 명이나 되고 보따리까지 있어 택시를 빨리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택시기사들은 당연히 합승이 가능한 손님들을 먼저 태우려고 노력하였다. 우리는 모든 손님들이 다 가고나면 어느 택시든 어쩔 수 없이 태워줄 거라는 가냘픈 기대를 안고 한 쪽에 서 있었다. 어린 두 아이는 춥다고 칭얼거리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택시 한 대가 여러 손님들의 부름을 뿌리치고 우리 앞으로 오더니 어서 타라는 것이었다. “얘들도 있는데 언제 집에 가려고 그렇게 서 있어요?” 하며 그 택시기사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의 가로등도 그날은 더욱 예쁘고 묵묵히 앞을 보며 운전하는 기사의 뒷모습이 천사 같았다. 택시요금이라도 더 주고자하는 내 마음마저 사양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운전 중 다른 사람을 태워주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만일 그 택시기사의 친절을 겪지 않았다면 나도 그런 생각을 못하며 살지도 모른다. 볼품없이 메마른 나의 가슴에 따뜻한 사랑의 불길을 뿜어주던 그 택시기사 덕에 나의 가치관에 변화가 온 것이다. 훈훈한 사회는 거창한 일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조그만 일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곤 한다. 특히 연말이면 자신을 밝히지 않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이야기가 꼭 나온다. 당연히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그 택시기사의 따뜻한 배려처럼 조그마한 사랑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천사의 사랑이다. 비록 하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랑, 크게 힘들이지 않고 베풀 수 있는 배려들이 바람을 타고 널리 퍼질 때 웃음꽃이 피는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 이제는 오래되어 그 택시기사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지만 어디에선가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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