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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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완두콩 몇알이

2004.11.11 04:25

정인 조회 수:373 추천:37

언제 어떻게 흘렸는지
째글탱이 완두콩알 몇개가
과자통 옆에 굴러 다닌다
그 푸르던 빛갈은 간데 없고
누르퉁퉁 바래져 쪼글탱이가 된 것이
아는 나나 완두콩인 줄 알지 딸 내미가 봤더라면
마른 껌 조각이라고 쓰레기통에 들어 가고도 남을
몰골로 이리저리 몇 날이나 굴렀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라도 그 속에 생명이
말라 비틀어져 죽지 않았다면
완두콩 향기나는 밥을 먹을지도 모른다
기대보다는 어디 보자 맘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화단 제일 구석진데다 흙을 아무렇게나
손으로 들썩 하고서 묻어 두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는지 그 조차 잊어 버리고
백합이랑 데이지꽃만 볼양으로 열심히 물을 줬는데
아니...
한구석에 소담스런 완두콩 포기가 나 여기 있지
하얀꽃 몇송이로 손수 축하 하면서 푸른 콩꼬투리를
수도 없이 매달고 있네
오! 미안 해라
죽은 벌레 묻어 버리듯 그렇게 아무렇게나
묻어 버렸는데
남주는 물 곁다리로 얻어 먹고서
어쩌면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었는고

잔뜩 째그러지고 메말라 생명이라곤
당췌 있을것 같지 않더니
나 보란 듯이 통통 영근 콩꼬투리들로
무거운듯 허리를 구부정하고
살아 있었음을 과시 하는 완두콩 몇알...

흙속에 묻은것 조차 기억 안하고
물 조차 제 몫으로 아니 줬는데
섭섭한 표정은 제 몫이 아니라는듯
할 일을 다 한 자랑스러움으로
당당하게 화단 한 구석을 차지 하고서
손길을 기다린 완두콩 몇알...

너를 보며
생명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보여주는
생명의 존귀함을 나는 다시 복습한다
마른 껌조각 같던
완두콩 몇톨 네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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