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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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2007.01.31 18:22

조두희 조회 수:231 추천:23

둥지
조두희


산들이 만든 우물에 오두막 하나 떠 있습니다 이곳에 표주박 하나 띄우고 외로운 물을 마시며 삽니다

겨울엔 산들만 쓸쓸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밤낮 적막이 흐릅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나무도 혼자 울다 울음을 그칩니다 아무도 달래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산골의 겨울 해는 늦으막해서 찾아와 마을을 한가롭게 거닐다가 오후 네 시도 되기 전에 부리나케 산을 넘습니다

하늘의 맘일까

눈이 내렸습니다 하얗게

홀로 산에 기대선 벌거벗은 나무들도
주인 없는 빈 까치집 지붕도
하얀 눈을 덮습니다

헤매 다니던 바람소리도
폐가의 허리 굽은 기둥들도
눈을 덮습니다

산문山門을 오르는 오솔길도
상수리 마른 잎새들도
눈을 덮습니다

오갈 데 없는 내 빈 몸도
버릇처럼 기웃대던
과거 속의 빈 벌판도
따뜻해지는 아침입니다

하늘의 맘일까
어찌 이리도 눈부신지요
세상의 평화입니다

한 번 내린 눈은 녹지 않고 겨우내 하얀 설원을 이룹니다 이 눈은 산골의 기온을 붙들고 놓아 주질 않아서 겨우내 춥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시와 함께 산책을 합니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햇살이 눈부셔 눈물이 납니다 세상을 사는 일이 이렇게 부질없으니(시를 쓰는 일도) 외로운 눈길에도 눈물이 고이는가 봅니다

가슴에 접힌 그리움 하나

사람들은 누구나
옹이보다 더 단단히
가슴에 꼭 접힌
그리움 한나씩 가지고 산다

하늘처럼 활짝 펴서
구름 한 장에 말아 띄울
그런 소망이 왜 없겠는가

늘 못견디게 마음 아픈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웃음처럼
버리지 못하는 불치병

버리려해도 곁에서 욱신거려
저 멀리 떠나던 태양도
낙조 하나는 놓고 갔다

쥐었던 거 다 놓아 버릴 수 없어
가슴에 접힌 그리움
서녘 가득 뿌려 놓았다

오늘은 누가 그리움의 산을 데리고 왔다는 말이 듣고 싶어 아침 부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대상도 없는) 내 그리움의 산은 그러나 당신의 그리움을 그토록 기다린다는 말을 당신에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하얀 마음에 덧칠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늘 기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눈 가득 눈물이 고이지 않는 사랑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둥지

자식들이 떠난 둥지들끼리
희미한 불빛 마주 앉아
놓고 간 얘기들 꺼내 놓는다

시키지 않아도
노인들 대신
개들 기침하다 멎으면

별들 붙안고 거닐던
도랑물도 홀가분해져

은행나무 우듬지들
길가던 보름달 품에 안겨
둥근 젖 빨다가 잠이 든다

고독이 그리운 저린 밤도
산동네 안고 깊은 잠에 빠진다

늦은 밤 오두막에 깃들던 별들이 하나 둘 떠나면 표주박 같은 오두막도 잠이 듭니다 나는 시린 어깨를 다시 이불 속에 묻으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부질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나 하얀 눈 위를 걸으며 남긴 발자국도 무심함으로 적막합니다 나도 이제 나의 둥지 오두막에서 그만 등불을 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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