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사과의 향기
홍인숙(Grace)
벌레가 베어먹은 과일의 향이
더 짙고 달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를 안아본 사람의 가슴이
더 깊고 따습다는 것을 안 것처럼
일상에 예기치 않던 일들이
불쑥불쑥 찾아들면
깊은 수렁을 허우적거리며
날카로운 계단을 올랐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낯선 얼굴
상처투성이 살갗을 부비며
내려다본 저만치 아래
어느새 훌쩍 커버린
사과나무로 내가 서 있었다
상한 사과의 짙은 향기처럼
내게도 이젠 성숙의 냄새가 풍겨난다
깊고 따뜻한 가슴도 만져진다
허우적거리던 수렁 속에서
소리 없이 자란 내가 대견스런 날
눈부신 하늘이
맑은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린
여름날의 오후처럼.
(2002. 10. 한맥문학 신인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