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에세이

봉선화와 아버지

by 홍인숙 posted Mar 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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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와 아버지 / 홍인숙(Grace)



봉선화


                 홍인숙(Grace)



해 아래 스쳐간
네 그림자에서
저녁내 붉은 그리움이
뚝뚝 떨어진다

낯선 곳에 기대어
당당한 어여쁨이라도
하필 왜 이곳이더냐

고국바라기 늙으신
내 아버지 길목에서
또 얼마나
애달픈 그리움 피우려고.


* * *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가 홀로 사시는 노인 아파트 길목에서
정말 뜻하지 않게 봉선화를 보았습니다.
타국에서 본 봉선화는 어릴 때 집 뜰에 피었던 봉선화보다
훨씬 더 붉은 꽃물을 뚝뚝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시렸는데
아버지의 눈에 비추어질 봉선화를 보니 겁이 덜컥 났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께서 친구 노인분과 비교하시면서
'나는 아직도 참 젊다!'시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연세 83세이신데 그 젊음을 감사해하시는 마음에
잠시 저까지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뺨에서 피어오르는 검버섯과
자꾸만 작아지는 키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쪽에서 추적추적 빗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50세 정도에서 노화를 멈추고 살다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꽃잎하나 흘리지 않고 화려하게 가지를 지키다
때가되면 미련 없이 송두리째 제 몸을 던지는 동백꽃처럼
그렇게 흐트러짐 없이 살다 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봉선화를 보시며 먼저 떠난 아내와 고국을 그리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아침 따뜻한 햇살에도 마음이 아파 옵니다.

200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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