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22
어제:
27
전체:
459,424


시와 에세이
2003.08.07 10:54

수국(水菊) / 어머니의 미소

조회 수 1158 추천 수 12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수국(水菊) / 어머니의 미소


                                                                                        홍인숙(Grace)
   



어머니의 미소 /  홍인숙(Grace)


저기 저 바람


그리움 가득 안고 오는 바람

봄 내내 꽃망울 피우지 못한

정원의 그늘진 한숨 뒤로

수국 송이송이

소담스레 피워 올리시고

하얗게 웃고 계신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좋아하시던 꽃이 수국이었다.
아침이면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앉혀놓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곱게 빗겨
갈래머리를 꽁꽁 땋아 예쁘게 묶어주시던 어머니.
그 딸아이의 손을 잡고 햇살 좋은 꽃밭에 나가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를 가꾸시고
한 곁에 소담스레 핀 수국을 가르키시며 늘 말씀하셨다.

저 꽃은 참 신기하단다.
토양과 햇빛에 따라 꽃의 색을 다르게 피우기도 하지.
한 송이씩 따로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난 왠지 저렇게 서로 옹기종이 이마를 맞대고 꽃을 피우는 수국이 참 좋구나.

오랜 세월이 지나 내가 그 때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든 지금, 그 음성이 자주 들리고
화원에 들를 때마다 수국 앞에서 오래 발길을 멈추곤 한다.
모든 과일이며 꽃들이 다 그렇듯이 미국의 수국도 한국에서 본 것보다 꽃잎이 크고 화려하다.
화려함에 치우쳐 가슴에 젖어오는 기분은 좀 덜하지만, 내 안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어머니의 음성을 길어내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주 수국을 사 날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 여년을 홀로 노인 아파트에서 지내시던 아버지께서,
연로함에서 오는 병환으로 이제는 혼자 지내실 수 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수차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말씀 드릴 때마다 자식에게 신세를 안 지시려는 마음에
건강한 모습만 자랑해 보이시더니, 이제는 아버지 스스로도 자식에게 의지하셔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는지 흔쾌히 승낙을 하셔서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시던 아파트의 짐을 정리하며 많은 물건들을 아낌없이 버렸는데,
한 구석의 꽃무늬가 화려한 화분에는 웬지 슬그머니 욕심이 났다.
분홍 꽃무늬와 청색 용무늬가 초록 바탕색에 화려하게 어우러진 크고 묵직한 자기(瓷器)화분이
보기에도 가치 있게 보여 집으로 가지고 왔다.
마침 응접실에서 탐스럽게 꽃을 피우던 분홍 수국을 그 화분에 넣으니 꽃의 빛깔과 화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수국꽃으로, 아버지는 그 꽃을 안고 있는 화분으로, 두 분의 영혼의 어우러짐이 행복하게
집안을 장식한다.
이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정리하고 자식과 함께 여생을 보내시는 아버지의 하루하루에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지켜드릴 것이리라는 믿음이 앞선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홍인숙(Grace)의 인사 ★ 1 그레이스 2004.08.20 1628
89 부활의 노래 홍인숙 2003.04.19 870
88 수필 삶 돌아보기 홍인숙 2003.12.02 870
87 밤비 그레이스 2006.03.18 871
86 내 안에 그대가 있다 홍인숙 2002.12.25 885
85 기다림은 텔레파시 홍인숙(Grace) 2004.10.16 891
84 행복한 날 홍인숙(그레이스) 2004.10.30 893
83 작은 들꽃의 속삭임 홍인숙(그레이스) 2008.09.10 896
82 수필 일본인의 용기 홍인숙 2004.07.31 900
81 안개 속의 바다 홍인숙 2004.08.02 901
80 슬픈 사람에게 홍인숙(그레이스) 2008.09.10 903
79 수필 슬픈 첨단시대 홍인숙 2004.07.31 904
78 눈물 홍인숙(Grace) 2004.10.16 906
77 수필 마르지 않는 낙엽 홍인숙(Grace) 2004.08.17 913
76 마음이 적막한 날 홍인숙(Grace) 2004.08.16 915
75 밤이 오면 홍인숙(그레이스) 2006.05.05 915
74 내가 지나온 白色 공간 홍인숙 2004.08.02 922
73 수필 새봄 아저씨 (2) / 아저씨는 떠나고... 홍인숙 2003.05.31 930
72 시와 에세이 존재함에 아름다움이여 홍인숙(그레이스) 2005.03.16 934
71 시와 에세이 사랑한다는 것으로 홍인숙 2003.03.03 936
70 인연 (2) 그레이스 2006.03.23 936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