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나가 마음을 비워내고 비워진 내 안에 철철 넘치도록 푸른 물살을 담고 돌아오면
나는 비로소 평안의 잠을 잘 수가 있다." 홍 시인 자서(自序)의 한 구절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척에 있는 천혜의 바다를 찾아갈 수 있는 베이-에리어에 살면서도 게으름
피운 우리들과는 달리, 홍 시인은 그 바다로 나가 열심히 시집 한 권을 엮어 냈다.
절망을 딛고 올라서니/ 어느새 키 큰 나무 한 그루/ 나를 바라본다./ 푸름 짙은 눈빛에/
서걱이는 한 몸 눕히니/ 다시는 안 올 것 같던/ 눈부신 아침/ 결 고운 햇살 아래/ 키 큰
나무와 나/ 물이 되어 하나로 흐른다./ 눈물겨워라/ 바로 여기로구나/ 바라만 보던/ 행복
이라는 섬이 -행복이라는 섬-전문
그 바다로 나가 그녀가 만난 것은 키 큰 나무다.
나무를 바라보고 사랑하며 함께 물이 되어 행복의 섬에 이른다. 높은 차원의 행복이 읽는 이의 가슴에도 채워져 온다.
살다가 외로우면/ 파고들 가슴 있는/ 큰 나무를 찾으리라/ -귀로- 에서
맑은 수액(樹液)으로 심장을 밝히고/....오늘도 축복으로 오신/ 님이시여/ -음악이 있음에-
그녀는 바다에 나가 키 큰 나무 뿐 아니라 키 큰 장미도 만난다. 농익은 사랑은 바다처럼
편안하고 넉넉하다.
고뇌보다는 이해를, 외로움보다는 행복을 바라보고 살기에 축복의 시를 쓰는 가보다.
바다는/ 어느새/또 다른 바다를 품었다./ -안개 바다- 중에서
바다가 뒤척인 파도에/ 보고픈 얼굴 하나 숨겨 놓았다./ -잠든 바다- 중에서
사알짝 /꽃 속 깊이 들어가/ 꽃이 된 나 / -꽃- 중에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사과나무로 내가 서 있었다/ ....내게도 이젠 성숙의 냄새가 풍겨 난다/
깊고 따뜻한 가슴도 만져진다./ 허우적거리던 수렁 속에서/ 소리 없이 자란 내가 대견스런 날
..... -상한 사과의 향기- 중에서
더 이상 예문을 들지 아니하더라도 그녀의 시는 중년 여인의 성취된 편안함을 준다.
실제로 홍 시인을 만나보면 여느 시인들에게서 느껴지는 메마름과는 거리가 먼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시도 건강하고 풍요롭다.
....그대 그 외침에/ 기쁨으로 달려오는 것/ -그리움- 중에서
그리움마저도 그녀에게서 시로 이루어지면, 텔레파시이며, 영혼을 다 바쳐 그대를 부르는 것
이며 기쁨으로 달려온다. 외로운 것들마저도 그녀의 가슴으로 풀어내면 기쁨으로 탈바꿈된다.
그녀의 심성이 편안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감성의 울림, 작은 감동의 파도들은 다음 시집에서
더 많이 품어 나오길 기대한다.
혹여 이 글이 독자의 식(式)대로 쓴 서평이라고 폄하 하는 이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손안에 잡히는 작은 시집 한 권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나면 당신 가슴에도 행복
이라는 섬이 보일 것이다.
(기사: 중앙일보 200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