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 *
문태준이란 시인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건 멀리 타국에서 한국문학계에 대해선 전혀 모르다시피 하면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나의 부끄러운 부분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시 읽기 도중에
'가재미'라는 시제가 눈에 띄어 호기심으로 읽었다.
그리곤, 첫 줄부터 곧바로 시에 흡입되어 마지막 행까지
단숨에 읽기를 몇번을 반복하며 애틋한 감동에 빠져들었다.
임종을 앞두고 죽음만을 응시하는 환자를 두 눈이 몰려있는
가재미로 비유한 시인의 시안이 놀랍다.
흘러간 날들의 기억을 더듬어 삶과 죽음을 구체적으로 탐색한 후
묘사한 수준 높은 작품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다
오늘도 좋은시를 발견하고 시읽는 재미에 젖어든 행복함을 안는다.
시인은 좋은시를 쓸 때 보다 이렇듯 좋은시를 만날 때 더 행복한 것 같다.
(그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