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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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하나처럼 <한국일보>

2004.08.17 04:15

그레이스 조회 수:329 추천:21


                      둘이서 하나처럼  /  홍인숙(Grace)
    

  
부부란 무엇일까.
꼭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둘이서 하나처럼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특별한 만남이 아닐까. 우리 부부는 그 특별한 만남 중에서도 좀더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생년월일이 같다. 태어난 시간도 거의 비슷하여 그야말로 역학에서 말하는 사주팔자가 똑같다.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이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시간에 진통하셨고, 우리도 거의 동시에 "으앙!"하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뿐인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등학교도 동기동창이며, 걸어서 이십 분 거리의 한동네에서 살았으니 아마 자라면서도 수없이 스쳐 지났을 것이다.

우리를 더 이상의 타인으로 비껴갈 수 없게 만든 역사적 만남(?)역시, 고등학교 시절, 그 많고 많은 모임 중 하필이면 둘이 같은 기독교 학생모임에 나갔기 때문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때의 만남은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을 거쳐 남편의 군입대와 제대, 그리고 몇 년의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십여 년을 쌍둥이 오누이처럼, 친구처럼 지내다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남편은 이 대목에서 무척 애통(?)해 한다. 한 여자와 너무 오래 가까이 지내다보니, 다른 여자들이 건네준 그 의미심장한 눈길들을 미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좋은 시절 미팅한번 못해본 자신이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는 주장인데, 그 억울한 사정으로 따지면야 나도 만만치 않을 것을 왜 모를까..

우린 생년월일만 같은 것이 아니라 성격도 닮고, 생각도 닮고, 취향도 많이 닮았다. 영화나 TV를 봐도, 책을 읽어도 같은 것에 공감하고, 물건이나 가구, 옷들을 사도 취향이 맞아떨어져 지금까지 자기 주장으로 실랑이를 벌인 적이 없다. 대화를 하여도 동시에 같은 말이 튀어나오기가 부지기수여서 언제부터인가 '당신 생각이 내 생각, 내 생각이 당신 생각'이라고 믿게 되었고, '귀신은 속여도 서로에게는 못 속인다' 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긴 세월을 함께 지내오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잘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이,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온 신뢰와 정, 그리고 이런 닮은꼴이 빚어낸 환상의 이중주 덕택이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감사하다.

어느새 아이들도 장성하여 이제 둘이 호젓하게 노을 길에서 마주 바라보게 되었다. 바라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변함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평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날도 오누이처럼, 친구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리라.

이 땅에 태어난 순간이 같으니 돌아갈 때도 나란히 손잡고 가지 않을까.
그때 저 하늘나라에서 우린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지려나.


<1995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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