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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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으로 <한국일보 >

2004.08.17 04:22

홍인숙(Grace) 조회 수:364 추천:34


                  사랑한다는 것으로

  
                                                         홍인숙(Grace)
    

  

"미세스 홍, 된장찌개 끓여 놨으니까 빨리 오세요."  미세스 오의 전화다.
소박한 상차림이 정겹고,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가 봄볕처럼 따스한, 서로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 십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겉으로 우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저 항상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을 느끼게 하는 친구이다.
  
편안하다는 것, 이 것만큼이나 더 확실한 사랑의 확인이 또 있을까.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내 안으로 소중히 끌어안고 자연스레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까이 있어 주다보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애써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도 정다운 눈빛 하나로 가슴 깊은 곳까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을. 난 가끔 이 쉬운 사랑의 개념조차 잊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늘어나는 잔주름이 마치 남편의 탓인 양 투정부리고,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쉴새 없이 잔소리를 해 대며 꼭 끝머리에는 이 엄마의 지고한 사랑 때문이라고 덧붙이곤 한다. 바로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그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이제는 너그러워지리라. 나의 사랑 안에서 그 누구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리라. 가족에게는 물론, 끊임없이 만나지는 사람들과도, 그 만남을 항상 첫 만남처럼 신선하고 소중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수준 높은 사랑의 감각을 가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친구가 맛있게 끓여 놓은 찌개가 식기 전에 남편과 함께 떠나는 차 속에서, 평소 좋아하는 서정윤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사랑하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희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1995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원제: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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