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16
어제:
38
전체:
458,321


삼월에 < 한국일보 >

2004.08.17 05:05

홍인숙(Grace) 조회 수:285 추천:35

                                                      삼월에
                            


                                                      홍인숙(Grace)



에밀리 디킨슨은 "Dear March, Come in!" 으로 봄의 노래를 시작하였다.
[정다운 삼월아! 어서 들어오렴. 빨리 달려오려므나, 얼마나 숨이 차겠니? 나와 같이 이층으로
올라가자. 난 네게 할말이 많단다.] 아이같이 천진한 이 시를 읽으면, 정말 삼월이 깡충 뛰어 들어
와 벅찬 숨을 할딱이며 내 가슴에서 쏟아지는 아야기의 봇물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신이 가장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을 계절, 봄이 다가온다.
봄은, 수많은 나무들이 새잎을 피우기 위해 그 가을 부끄러움 없이 훌훌 옷을 벗고, 두려움 없
이 쏟아지는 겨울눈을 맞아 가며 고난을 극복한, 그 숭고한 투쟁 끝에 맞이하는 최대의 보상이다.

지난해는 참으로 암울한 계절을 보냈다. 피가 멎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
했다. 그 참담함을 난 철저히 혼자서 바뀌는 계절마다 옮겨가며 견디어 내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손 내밀지 않고, 카프카의 [변신]에서 처럼 한 마리의 곤충이 되어 버둥대
며 왜 내가 살아 있는가에 신음하였다. 그러다 솔로몬의 전도서를 펼쳤다.
생에 가장 어려울 때, 최상의 자리에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방법의 나에 대한 치유책이었다. 솔로몬은 거듭 탄식하였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겨우내 묵은 이불을 봄볕에 널며, 나의 전부를 절대자의 손에 맡긴다.
하얀 옥양목 사이로 금세 햇살이 쏟아진다.
"당신이시여! 내가 마주하는 사물은 오로지 당신이 이 세상에 내리신 은총입니다. 내가 살갗을
찢기는 추위로 지난겨울을 지내면서도 정직했던 것은, 어느 한날 이렇게 당신 앞에서 맑은 눈물
한방울 흘릴 수 있는 작은 용기라도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봄 삼월에게 비로소 나의 아야기를 시작하렵니다."

"자! 삼월아, 어서 이리 오렴. 난 네게 할말이 많단다."


<1995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8 겨울밤 < 순수문학 2002.11 > 그레이스 2004.08.26 230
107 연등이 있는 거리 < 순수문학 2002.11 > 그레이스 2004.08.26 219
106 눈이 내리면 < 한맥문학 2003. 01 > 그레이스 2004.08.26 226
105 잠든 바다 < 문예운동 2003 . 가을> 그레이스 2004.08.26 322
104 해 저문 도시 < 문예운동 2003. 가을 > 그레이스 2004.08.26 220
103 아버지의 아침 <; 오레곤 문학 1호 . 2003 > 그레이스 2004.08.26 228
102 눈부신 봄날 < 미주문학 22호 > 그레이스 2004.08.26 229
101 2003년의 식목일 < 미주문학 23호 > 그레이스 2004.08.26 263
100 내 소망하는 것 < 미주문학 24호> 그레이스 2004.08.26 274
99 안개 자욱한 날에 < 미주문학 25호 > 그레이스 2004.08.26 246
98 아버지의 아침. 내 안에 그대가 있다 . 비상의 꿈 [ 한맥문학 2003. 7월 / 이민 백주년 미주시인 특집 ] 그레이스 2004.08.26 678
97 날개, 안개 자욱한 날에 [한맥문학동인 사화집 2003] 그레이스 2004.08.26 304
96 대표시 7편 [ 한인문학 대사전 / KOREAN AMERICAN LITERARY ENCYCLOPEDIA ] [1] 그레이스 2004.08.26 455
95 삶의 뒷모습 < 미주문학 26호 > 시와 시평 홍인숙(Grace) 2004.08.26 293
94 또 하나의 세상 < 미주문학 27호 > 그레이스 2004.08.26 265
93 거짓말, 눈부신 봄날 < 시세계 2004 .여름 > 그레이스 2004.08.26 361
92 아리랑.., 아버지의 아침, 예기치 못한 인연처럼 < 미주 펜문학 /2004년 > 그레이스 2004.09.01 252
9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미주문학 28호> 그레이스 2004.10.22 225
90 바다가 하는 말 < 미주문학 29호> 그레이스 2005.01.25 295
89 나무에게 <샌프란시스코 펜문학 창간호> 그레이스 2005.02.13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