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41
어제:
16
전체:
458,112


박목월 선생님 < 한국일보 >

2004.08.17 06:07

홍인숙(Grace) 조회 수:289 추천:27

                                               

                                   박 목월 선생님
                          


                                                                                        홍인숙(Grace)


  
[강나루 건너서 밀 밭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선생님의 [나그네]라는 시다. 크신 키에 봄볕 같은 미소와, 경상도 억양이 담긴 친근
한 음성,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약 25년 전 선생님의 멋진 모습이다.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지만, 이 [나그네]와 함께 선생님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더욱 가슴 깊이
자리 잡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벼이삭이 끊임없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한 나는
무슨 나무들이 저리도 끝없이 펼쳐있느냐고 물었다.
서울 토박이로 자라, 쵸코렛과 팝송에 길들여진 전형적인 도시의 아이가 그 장엄한 자연의 신
비와 시골의 정서를 알리 없었다.

선생님의 시는 대부분 전원적인 시풍을 갖고 계셨고, 철없던 나는 그런 선생님의 글을 공감할
수 없어 늘 외로웠다. 그 당시 내게 있어 선생님의 시는, 밤새워 읽고 꿈속까지 가져갈 황홀한 것
도, 가슴에 잔잔히 부서지는 밤바다 같은 것도 아니었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 낙방하고,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들어간 학교에서의 그 좌절과 분노
가 엉뚱하게도 담당 교수이시던 선생님께 분출되었던 것 같다.
자주 강의도 빠졌고,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도 다른 시인의 감미로운 시집을 몰래 읽곤 하였다.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수록 선생님의 시 한편 한편이 가슴에 그리움으로 닿아 오고, 그와 비례하여
나의 죄스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특히 이 [나그네]에서 반복되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에서는 선생님이 그 훌쩍하신
모습으로 벼이삭을 흩날리며 한 자락 바람이 되어 훠이 훠이 걸어 나오시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

언제일까. 꼭 선생님 묘소에 들르리라. 선생님 닮은 하얀 들국화 한 다발을 놓아 드리고 참회
하리라.


<1995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8 대표시 5편 [한미문학전집/재미현역시인 101선 시선집] 그레이스 2012.02.14 854
187 무료한 날의 오후 (YTN-TV 뉴스 '동포의 창' 동영상 ) 그레이스 2007.11.19 776
186 문을 열며, 겨울커튼, 나무에게 <시향만리> 홍인숙(그레이스) 2008.07.17 731
185 아버지의 단장 / 삶의 뒷모습 <시와 정신 31호> 그레이스 2010.09.18 727
184 아버지의 아침. 내 안에 그대가 있다 . 비상의 꿈 [ 한맥문학 2003. 7월 / 이민 백주년 미주시인 특집 ] 그레이스 2004.08.26 678
183 쓸쓸한 여름 , 나무에게 < 중앙일보> 홍인숙(그레이스) 2008.07.17 658
182 쓸쓸한 여름 <문학과 창작> 그레이스 2008.08.29 603
181 나무에게 (YTN-TV 뉴스 '동포의 창' 동영상 ) 그레이스 2007.11.19 584
180 " I LOVE JESUS"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21 582
179 그리스도 안에서 빚진 자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23 544
178 추수감사절의 추억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23 539
177 아버지의 단장 외 1편 <문예운동 통권 85호> 그레이스 2008.08.29 535
176 저녁이 내리는 바다 <한국일보> 홍인숙(그레이스) 2007.03.07 525
175 불면 <미주문학 38호> 그레이스 2007.10.30 523
174 In Loving Memory of John Ildo Righetti<한국일보> 홍인숙(Grace) 2004.08.24 523
173 날개 <문예운동 100호 특집> 그레이스 2009.05.12 519
172 그리운 이름 하나 < 시마을 문학회 사화집 4호 > 그레이스 2004.08.25 519
171 아이들을 위한 기도 < 크리스챤 타임즈 > 홍인숙(Grace) 2004.08.18 510
170 나목(裸木) <한국일보> 그레이스 2007.02.09 508
169 가을 그림자 <미주문학 37호> 그레이스 2007.01.09 507